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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n 29. 2018

여름 좋아?

엄마가 모기약을 뿌리기 전 분명히 경고했지만 오늘도 역시다.


아유. 못살아. 빨리 들어갔다 와. 모기약 다 세겠네.


하압!숨을 참고 빠르게 방에 들어가 놓고 온 물건을 집어 나온다. 휴- 모기약의 화학성분 냄새는 모기를 죽이기에 적합할 뿐 아니라 사람을 아프게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엄마는 모기약 세는 걱정을 하셨지만 그 약을 마시게 될 성장기 자녀 건강을 더 염려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모기약을 뿌리고 집 앞 공원이나 옥상으로 돗자리와 수박을 들고나가는 게 일상이던 여름. 공원에서 한 시간쯤 시간을 보냈는데 어릴 땐 동네 친구들과 씽씽이를 탔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워크맨을 끼고 놀았다. 가만히 누워서 밤의 향기도 듣고 라디오를 들었다. 여름밤 라디오의 하이라이트는 '별밤 가족캠프'였다.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 방송의 적당한 어수선함에 나는 쉽게 들뜨곤 했다. 가수들의 특별한 공연도 좋았고 캠프에 참여한 끼 있는 학생들도 재미있었다. 이기찬이 데뷔하기 전, 박경림이 데뷔하기 전 별밤 가족캠프에서 떡잎을 드러내 보이던 시절. 라디오에 취해 옥상에 누워서 깔깔거렸다. 옥상에서 주파수 맞추기가 쉽지 않아 잡음이 적은 자리를 찾아내는 일은 상당히 예민한 작업이었다. 눞는 자세까지도 조심스러워야 했다.



름엔 평범한 낭만이 넘쳤다. 방학 동안 안부가 궁금한 친구 집에 전화할 땐 인사말을 한 번 속으로 읊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뽕이 친구 둥둥인데, 뽕이 있어요?


집으로 전화를 해서 방학 때 뭐하고 지내는지 언제 만나서 놀러 갈지를 정하고 또 몇몇에겐 손편지를 쓰고 우편으로 보냈다. 1997년의 여름은 잊히지 않을 만큼 더웠다. 기록적이었던 1994년의 여름만큼 더웠다. 냉방시설을 도입하기 전이라 교실엔 달달거리는 선풍기뿐이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친구들은 의자 아래 세숫대야를 두고 발을 담그기도 했고 야자시간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샤워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촤아-촤아- 저녁시간 내내 화장실엔 물 끼 얻는 소리가 가득했다.


장맛비가 거세가 후려치는 날엔 기대하는 바가 있어 야자가 끝나자마자 시장 골목을 빠르게 걸었다. 비가 많이 오면 상인 분들이 장사 마무리 전 남은 과일을 더 싸게 팔기 때문이다. 두 팔로 감싸 들어야 하는 크기의 수박을 500원에 산 적도 있다. 왜 여고생 둘이 수박 한통을 샀는지 모르겠다. 수박 한통, 자두 한 바구니를 사 가지고 독서실에 도착하자마자 휴게실에서 와구와구 먹었다. 어색하게 인사만 하던 옆자리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숨이 찰만큼 수박을 양껏 먹고 나면 이제 자야 할 차례다. 쿨쿨 자다가 12시 반쯤 일어나 집으로 걸어갈 땐 밤공기가 서늘하다. 결국 오늘도 먹고 자고 집으로 간다.


공원의 여름, 옥상의 여름, 안부가 궁금했던 여름, 무더위가 징글징글하던 여름.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은 휴가없던 여름들이다. 습관처럼 반복하던 일들이 특별하게 즐기는 며칠간의 휴가보다 좋았다니.  일상이 좋은 여름엔 휴가가 필요없다는 반증이겠지?


올 여름은 통째로 휴가삼고 싶다. 자매님은 말했다.


 꼭 무슨 일이 아니어도 그런 고민 할 때지.
그렇지?그래.


잘 쉬었어야했다. 휴식을 놓쳤더니 휴가가 아니라 안식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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