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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Oct 31. 2020

Radio never die.

뭘 자주 잃어버린다는 게 어릴 땐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건 자주 혼나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다 우산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시간에 한 번 바닥 떨어진 연필을 다시 찾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 지갑, 물체 주머니, 실내화 등등 단속해야 할 물건은 많은데 나는 한 사람이고. 어쩌란 말인가. 아침에 ‘오늘 우산 잃어버리면 아주 가만히 안 둬.’라고 엄마가 말하면 이미 오후에 엄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이 나눠주는 가정통신문을 제대로 배달하지 못해 혼나는 건 일상이었다. 그로부터 해방될 방법은 없어 보였지만 뼈아픈 실패를 반복하며 나는 아주 조금씩 느리게 잃어버리는 버릇을 고쳐갔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크고 중요한 물건들을 소유하게 되었고 더 크고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더 크게 혼나야 했다. 오전에 새로 산 핸드폰을 그날 저녁에 잃어버리는 식의 불행을 감당해야 했다. 이런 비극과 혼돈 속에서 또렷하고 선명하게 떠오른 하나의 교훈. 무엇에 큰 애착을 가지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혼나는 것만큼 애정을 쏟았던 것의 부재가 괴롭기도 했다. 그런 게 뭐가 있었을까. 생각도 안 날만큼 나는 함부로 정 주지 않는 습관을 잘 실천하고 산다. (혹은 애정을 쏟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기 전에 잃어버렸거나)



그래도 내가 가진 것들을 다 버리더라도 남기고 싶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래된 라디오 녹음테이프 들이다. 중학생 때부터 열심히 녹음한 라디오 녹음테이프들. 너무 오래돼서 혹여 상할까 봐 이젠 함부로 플레이도 못한다.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 박소현의 FM데이트,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김현철의 디스크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신해철의 음악 도시까지. 녹음해두고 듣고 또 들어서 어떤 날의 어떤 에피소드나 어떤 말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별밤 게스트로 나오던 신동엽, 컬트트리플, 방실이, 전람회,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코너 '신승훈의 노래세상', 별밤 여름캠프와 잼콘서트. 아날로그 시대의 라디오 키드에게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를 피해 전파를 잡는 기술이 필수다. 특히 내 방은 전파가 지저분하게 잡히는 편이라 가끔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참에 앉아 듣기도 했다. 그 모든 소리가 테이프 안에 담겨있다. 지금 다시 그 테이프를 플레이하면 그땐 지겨워서 빨리 돌려버리고 싶던 라디오 광고조차 귀엽고 흥미로울 것이다. 애착이란 건 그 물건보다 그 시간에 대한 마음인 것 같다. 그냥 쓰담 쓰담하고 싶은 마음. 굳이 열어보지 않고 그 물건이 있는 자리만 생각해도 저절로 열리는 과거의 문. 그래서 시간과 상호작용 하면서 애착은 점점 뿌리가 깊어진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데 참 이상하지.



Video kills the radio star라고 노래도 부르지만 라디오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야, 너 오늘 두 시의 데이트 들었어?’하고 친구랑 수다를 떨고 직장생활 중엔 철야를 하면서 사연을 보내 당첨이 되기도 하고 퇴근길 문자로 신청곡을 보내고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예상치 못한 기쁨도 누리면서 라디오를 즐겼다.


요즘은 그때만큼 라디오를 자주 듣지 않지만 비슷한 느낌의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은 “도란도란”. 그들끼리 도란도란 이지만 괜히 나도 같이 도란도란 인 것 같은 라디오 세상. 그리고 팟캐스트. 혼자 보내는 시간이 생기면 이제 다 외워버린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의 예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둔다. 인생의 배경음악처럼. 시간이 더블링 되는 기분으로. 애착 물건이 아니라 애착 시간을 불러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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