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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Dec 30. 2020

일회용 플라스틱을 피할 수 있을까

택배를 주기적으로 보내는 입장이 되니 받을 때보다 몇 배 더 포장이 신경 쓰인다. 비닐이나 플라스틱류를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친환경은 돈이 든다. 돈이 많이 든다. 선택지도 좁다. 특히 완충재는 선택지가 한정적인데 비닐을 피하려면 종이로 가야 한다. 그럴 경우 보냉재 문제를 또 해결해야 한다. 종이가 젖어버리고 물기가 제품까지 닿아 버리면 안 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냉 포장을 대체재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2019년은 noplastic 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이슈가 되어 텀블러 사용이나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가장 높았던 한 해였는데, 2020년은 슬프게도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이 몇 배는 많아진 한 해였던 것 같다. 투표소에서 나누어 주는 일회용 장갑을 끼는 것도 무척 죄책감이 들었다. 국민의 권리와 환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이렇게  불편하게 닿아있다니.



가게에서 쓰는 제품들 중에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꽤 많은데 아까도 말했듯이 대체재가 아주 적고 비싸다. 마음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다 녹고 빙하에 갇혀있던 매머드가 발견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예측할 수 없는 태풍과 홍수가 매년 반복되고 미국 산불이 해마다 무서운 규모로 커지고 굶주린 북극곰들이 러시아 민가로 내려오는 일이 반복되는데 이 거대한 기후변화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정말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조별과제 느낌이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도 기후변화 영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 모든 변화와 기후변화의 연결고리가 아직 우리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안다 한들 행동과 선택은 또 다른 문제다.


12년 전에 기후변화 특집 방송을 준비하면서 이 흐름을 바꾸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7년이라고 하던 전문가 말이 기억난다. 2년 전 에너지 쪽 관련 일을 하시는 분에게 "아직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비극을 정말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내심으로는 ‘이미 늦었잖아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의 대답은 나와 비슷했다. 아주 많이 나쁜 미래와 덜 나쁜 미래 중 선택하는 일이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22세기는 없다고 가르치기도 한다는데. 21세기가 인류의 마지막 역사라는 건 아포칼립스 영화의 일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 중 누구도 인류의 미래가 지금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공상과학 영화나 미래사회를 다른 영화들은 모두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기후변화에서 환경호르몬, 전염병까지 가다 보면 아무래도 좋은 생각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비닐봉지, 일회용품, 플라스틱 용기를 쓰고 버릴 때면 죄책감이 점점 커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피하고 살 수도 없다. 가끔은 완벽히 noplastic life를 실천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보통의 결단이나 신념이 아니고는 어렵다. 굉장한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가능한 몇 가지를 실천해보려고 집에서는 가족들 모두 대나무 칫솔을 쓰고 있는데, 그마저도 솔 부분은 플라스틱이다. 완전한 친환경 칫솔을 만드는 건 비용 문제나 동물보호 문제와도 연결되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미세모에 길들여져서 진짜 친환경 동물 털로 만든 칫솔로 양치를 하면 입에서 피가 나거나 이물감을 견디기 힘들 거라고도 한다.



어차피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엔 늦어버렸고, 우리의 미래가 최악이냐 차악이냐 선택하는 거라면 너무 슬프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무슨 상관이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나빠지는 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 나빠지느냐를 생각하면 그건 더 무섭다. ‘상상 이상’이란 말의 강력한 힘은 코로나를 통해 충분히 깊게 체험해봤으니까. 그러니까 상상하기도 어려운 ‘최악’보다도 나쁜 ‘최악’ 이란 건 정말 무시무시할 거란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플라스틱 제품을 쓰고 일회용품을 쓰는데, 죄책감과 행동, 머나먼 미래 모두 너무 마음이 무겁다. 30-40년쯤 후의 보송보송한 미래를 그린 영화 같은 거 한 편 없을까.  찝찝함을 조금 덜어내고 희망찬 생각을 좀 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영화 'men of childre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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