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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30. 2020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나의 콤플렉스라면 지방 여행을 자주 못 해봤다는 것, 그래서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 초반까지 제대로 된 국내 여행이라곤 부산에 다녀왔던 게 전부였다. (흐릿한 경주 수학여행 같은 건 빼자. 안면도 엠티 같은 것도 빼자.) 학교를 졸업하자 친구들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결혼을 하면서 지방으로 내려갈  기회가 조금씩 생겼다. 새로 사귄 친구의 집이 지방에 있는 경우도 생겼다. 지방 친구네 집에 처음 간 것은 전주 옆 삼례였다. 친구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몇 가지 당부를 들었다.


우리 엄마가 작정을 했어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 가문의 손님맞이다 하는 걸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으니까 입을 쉴 생각 하지 마세요.


전주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는 집으로 가기 전 점심부터 먹어야 한다며 준비한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 차 뒤꽁무니를 따라 30분 쯤 달려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의 단골 붕어찜 집이 나왔다. 귀한 손님이 올 때만 소개한다는 맛집이었는데 이미 들은 바가 있어 우리는 식도까지 음식이 차도록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1박 2일 동안 전주비빔밥 맛집, 손두부 맛집, 숯불고기 맛집으로 돌며 김 씨 가문의 손님맞이를 진하게 경험했다. 가족들 사이에서 친구를 보면서 내가 아직은 모르던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어 우리의 세계가 조금 더 친밀하게 만나는 것 같았다. 종종 여름휴가 때 친구를 보러 가면 낯선 고장에 익숙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괜히 포근한 기분이었다.



삼례 이후로 두 번째 지방 방문지는 군산이었다. 지방에 연고가 없던 중학교 절친이 군산에 신접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외로운 친구를 본다며 계절마다 내려갔다. 이후 군산에서 광양, 순천으로 친구가 이사를 다니면서 나의 지방 경험치도 쑥쑥 올랐다.  덕분에  버스여행의 매력을  즐기게 되었다. 5-7시간 버스 여행은 지루하지 않았다. 친구는 남도 생활을 제대로 즐기는 편이었다. 친구네 집에선 아침에 눈을 뜨면 아파트 앞 천변에 백로가 앉아있었다. 여름엔 실내 수영장 대신 계곡에 애들을 풀어놓고 그 옆 평상에서 삼계탕을 시켜 먹는 멋을 알았다. 촌스럽게 수영장이나 다닐 때가 아니지.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하면 점심 먹고 근처 산으로 가서 주인아저씨 허락을 받고 토끼 밥을 준 후에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도토리를 주웠다. 광양 매화 축제에서 일출도 보고 부부가 가게 일하는 사이엔 친구의 6살 첫째 아들과 순천만 정원에서 놀고 레드벨벳 케이크도 나누어 먹었다. 도시 촌놈의 촌스러운 동경 그 안에서 다 채다.


친구는 아침부터 밤까지 엄선된 메뉴로 나를 먹였다. 그녀의 맛집 리스트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맛집들을 호락호락하게 인정해주지 않았다. 직접 먹어보고 평가한 맛집으로만 나를 안내했다. 아무리 유명해도 본인이 인정하지 않은 곳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먹었던 주꾸미 볶음은 대단했다. 겨울의 주꾸미는 문어처럼 통통하고 탱글탱글했다. 홀을 둘러보시는 주인아저씨에게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하니 익숙한 칭찬이라는 듯 뿌듯한 미소로 화답하던 주꾸미집. 주인아저씨가 직접 테이블마다 돌며 구워준다는 곱창구이 집도 인상적이었다. (친구네 맛집은 사장님들의 장악력이 좋다. 어쩌면 그래서 맛집 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선 함부로 집게에 손댈 수 없었다. 집게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아저씨뿐. 그것이 그 집의 룰이었다. 과연 그럴만했다. 아저씨의 장인 정신은 꽤 많은 인내를 요구했지만 맛 또한 과연 장인의 솜씨였다.



친구 덕에 남도의 정취 스며들어 나는 섬진강변과 지리산 자락을 동경하게 됐다. 그래서 수시로 휴가를 내고 친구네를 드나들었다. 친구네 시어머니와 둘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친구의 시어머니도 나를 "둥둥 아"라고 편히 부르실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네 집을 벌써 2년 넘게 못 갔다. 회사원일 때는 명절이나 휴가 때 곧잘 내려가 가게 일도 조금 거들곤 했는데 이제 내려갈 엄두도 못 내게 됐으니, 그래서 그때 그렇게 발바닥이 닳도록 드나들었나 싶다. 바닥에서 뒹굴던 쌍둥이가 어느새 나만큼 커서 이제 같이 순천만에 놀러 가 주지도 않을 테니 다시 내려가면 친구랑 둘이 호숫가 근처 산책하면서 떡볶이도 먹고 사진도 찍어주고 싶다.


그러니까 코로나 때문에 일 때문에 발이 묶인 요즘,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는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이다. 쌍둥이와 친구가 사는 순천, 붕어찜 어머니와 친구가 사는 익산, 흥 많은 소녀들이 사는 방콕, 쿵짝이 잘 맞았던 친구들이 사는 부줌부라. 엄마는 맨날 갔던 데만 또 가냐. 휴가가 아깝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래서 가는 건데. 그곳에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언제 다시 보러 갈 수 있을까? 너희들. 내년엔 한 번쯤 기회가 생길까? 여행이란 말이 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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