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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15. 2021

거짓말 없인 못 살아.

거짓말은 다양한 문학과 예술 작품, 다양한 창작물에서 핵심 주제 혹은 주요 트리거로 작동한다. 지금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도 나이브스 아웃, 트루먼쇼, 리플리, 완벽한 거짓말, 어톤먼트,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 정직한 후보, 한 톨의 밀알, 속죄, 그리고 클래식 오브 클래식 피노키오까지. 거짓말이 맥거핀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참 많다. 후더닛 무비에선 누가 거짓말을 하느냐, 믿어도 되느냐, 믿었는데 네가! 혹은 아니 뜻밖에도 당신이?! 식의 전개가 흔하다. 그만큼 거짓말이 우리에게 매력적이거나 유혹적인 발명품 혹은 그 무엇인 것 같다. (‘연애’가 발명된 것처럼 ‘거짓말’이 발명인지는 생각이 필요하다. 아담이 처음 에덴동산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발명인지 발견인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8분에 한 번 거짓말을 한다는데, 예를 들면 “이거 솔직히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나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같은 말들도 그 거짓말에 포함되겠지. 집에 있다 보면 거짓말이 확실이 준다. 대외활동 지수와 거짓말 횟수는 비례하는 걸까? 거짓말 횟수와 대외활동의 상관관계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영상채널 활용지수와는 분명 관계가 있다. 강제 집순이 생활 때문에 부쩍 넷플릭스와 왓챠와 붙어살게 되었다는 것이 증거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주제를 따라 골라보는 흐름을 타버렸고 전쟁사, 동화, 판타지에 대한 이런저런 영상을 골라보는 중인데 당연히 거짓말에 대한 것들도 찾아봤다. 그중 가장 마음이 묵직했던 이야기는 ’ 제이콥의 거짓말‘이고 신묘한 이야기는 ’ 거짓말의 발명‘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온갖 비극 속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 제이콥의 거짓말‘은 이런 독백으로 시작된다. 


히틀러가 점술가에게 물었다. "내가 언제 죽겠나?" 점술가가 대답했다. "유태인들의 공휴일입니다." 그러자 히틀러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점술가가 말했다. "그날은 유태인의 공휴일이 될 테니까요." 넌 유태인으로서 내게 물었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하죠?" 그게 우리가 살아남은 비결이지. 그것이 우리를 지탱하게 해 준 거야. 그 외의 것은 전부 독일인들이 가져갔어. 우릴 '게토'에 가둬놓고 높은 철조망을 쳤지. 우린 수년간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던 거야. 우리가 의지한 건 사소한 것들이었어. 우울한 농담. 화창한 날씨. 희망적인 소문, 


농담과 거짓말은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 거기에 희망까지 붙여도 꽤 자연스러울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이콥의 독백처럼) 농담과 거짓말은 생존의 필수요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극이 깊어질수록 더욱 그렇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동 버전이었다면 '제이콥의 거짓말'은 어른용이라고 할까. 


‘거짓말의 발명’은 인류에게 거짓말이 없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시작한다.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냥 거짓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모조리 여과 없이 말로 ‘진실되게’ 싸버린다. 정말로 싼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어울린다. 배설과 같은 말 때문에 자신을 포장할 수도 없고 상처 받는 일을 피할 수도 없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전제하에 영화가 시작된다. 가끔은 ‘나는 거짓말은 안 해.’라고 연막을 치고는 무례한 걸 솔직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한때는(혹은 아직도) 그런 걸 쿨하다고 부추기기도 했으니. 부끄럽지만 나도 알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굳이 예의 차려 상처 받지 않도록 말하고 싶지 않은 경우엔 그랬다. 상대가 모른다면 고맙고 알아챈대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언짢은 감정을 뿜어내거나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걸 선택한 것인데, 그러고 보면 거짓말은 '해소'의 역할도 하는 게 분명하다. 역시 인간에겐 거짓말이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들고.



'제이콥의 거짓말'에서처럼 거짓말이란 건 때론 의도하지 않게 시작돼서 의도한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거짓말의 발명'에서처럼 설명할 수 없는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게 때론 희망에 가 닿기도 하고 불행히도 비극과 맞닿기도 한다. 거짓말은 그래서 가끔 인간의 발견이나 발명이 아닌 하나님의 농담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가벼운 농담으로 나를 자주 웃겨주는 친구가 최근 통화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가장 나쁜 일은 2020년에 다 겪었어. 올해는 뭐라도 작년보다 좋을 거야. 좋은 일만 쭉쭉 있을 거야. 몰라. 나는 그렇게 믿을래. 


거짓말을 하면서, 그걸 알면서 이번엔 그것이 부디 희망에 가 닿기를 바라는 명랑한 인사말이었다. 나도 슬쩍 그 거짓말에 탑승해본다. 희망에 베팅!


<이미지 출처: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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