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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y 14. 2021

덜컹대는 5월

실로 오랜만에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했다. 워낙 시력이 나쁘니 6개월에 한 번은 검사를 하는 것이 좋지만 정기검진을 너무 오래 하지 않은 것은 무서워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제 나이도 있고, 마침 동생이 비문증 증상이 있어 검사하러 간다기에 함께 예약을 했다. 1년 전부터 느낀 몇몇 자각 증상들을 떠올리니 불안의 뚜껑이 툭 하고 열렸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선생님께서 "동생분은 괜찮고, 언니는 주변부까지 한 번 봤으면 좋겠데."라고 하시는데 올 것이 왔나 싶었고 저절로 목소리가 작아졌다.      


정밀 검사 날짜를 서둘러 잡았고 며칠 만에 오늘 다시 안과에 갔다. 산동제를 넣고 시신경, 수정체, 유리체, 망막까지 검사하고 안압과 눈 길이를 확인하고 녹내장 여부도 확인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단 하나 무언가 고칠 기회를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시력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후각도 엉망이지만 시력은 정말이지 오랫동안 나를 슬프게 했다. 이젠 그런 생각 덜 하지만 왜 하필. 이란 생각을 수없이 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임신 중 심한 입덧으로 여러 번 쓰러졌던 일이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앓았던 뇌수막염이나 백일해와 충격적인 몇몇 사건을 원인으로 추정하면서도 결국 공통적으로 자기 탓을 하곤 하는데, 그건 절대 엄마 탓이 아니라는 말을 내가 했을까? 그냥 내 몫의 삶일 뿐이고 엄마에겐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      

어쨌거나 나의 눈이 특별한 관심을 요하는 내 삶의 가장 큰 가시인 것은 사실이었다. 흔하게는 어릴 때 친구들과 수영장에 갈 때도 나는 그다지 즐기지 못했는데 안경을 벗고 물놀이를 할 수는 없고 안경을 쓰고 들어가는 건 어린아이에게 위험하고 불편한 일이라 그냥 물놀이를 하지 않는 걸 선택해야 했다. 어릴 때는 시력이 좋지 않은 것 자체가 놀림거리가 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좀 더 소심한 사람이  되었을까?     



바울이 간청했듯 나도 비슷한 기적을 바라기도 했고 불가능한 상상도 자주 했다. 어느 날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또렷하게 보이는 상상. 최근에 또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진료실 의자 위에서 했다. 눈 촬영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선생님이 한동안 말이 없으셨는데, 그 틈에 “엇, 여기 얇은 막이 하나 있는데, 어? 이거 때문에 그동안 잘 안 보이셨을 텐데.” 하면서 막을 거둬내고 그럼 나는 아주 선명하게 보게 되는 망상을 하고 말았다.      


냄새로 경험하는 세계를 모르는 만큼 나를 답답하고도 슬프게 하는 게 시각으로 접하는 세계다. 물론 안경의 도움이 있어 다행이고 그래서 수백 년 전에 태어나지 않은 것도 감사하다. 내가 불안한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선생님께서 차근히 설명을 시작하셨다. 시력이 워낙 나빠서 눈 길이가 많이 길고 안압도 높다고 했다. 사진에 전반적으로 표면이 얇은 것이 보였다. 다행히 녹내장은 없었고 망막 일부는 예방 차원에서 레이저 시술을 했다. 평균치를 벗어나는 숫자들은 불안하고 썩 좋지 않은 징후들이 있었지만 좋은 소식 하나는 망막이 생각보다 두껍다는 것. 검사를 앞두고 지난 며칠간 마음이 신산했지만 큰 일은 없었고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요즘 즐겨듣는 피아니스트의 연주곡을 쭉 꺼내 들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 필요했다. 검사하면서 넣은 약들 때문에 눈이 시리고 시야가 좋지 않아서 눈을 감고 들으니 더 좋았다. 잠시 카페에 들러 라떼도 한 잔 했다. 좋은 라떼를 파는 카페를 알고 있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가장 가까운 프렌차이즈로 들어가서 후루룩 마시고 나왔다. 병원에 앉아있는 동안 시원한 라떼가 자꾸 생각이 났다. 평소엔 우유때문에 자주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그렇게 땡기더라.



안과에 다녀와서는 바로 LG서비스센터에 갔다. 어젯밤 내 손이 나 모르는 새 노트북 액정을 깨버린 것이다. (당최 내 손 정말.) 20분 만에 20만 원을 털렸다. 내 치료비보다 비싸다. 5월 들어 커피 머신을 수리하고 안과에 다녀오고 노트북을 수리하느라 돈 보다 기운을 더 쓴 것 같다. 모든 고장은 예고도 없으니까. 고장 난 것들을 고치며 5월의 절반을 보냈다. 그리고 5월 들어 주변에서 어머니들의 질병에 대한 소식을 연이어 듣고 있다. 다섯 살 아이가 된 엄마 이야기, 갑자기 원인 모를 무릎 통증으로 걸음이 불편해진 엄마 이야기, 우리 엄마는 수술했던 신경섬유종이 재발해서 크기가 자라고 있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듣게 되는 나쁜 소식들은 대부분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불안해진다. 우선 나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안과 정밀검사를 해야겠다. 오늘은 루테인이랑 Mk7도 주문해야겠다. 올해의 5월은 너무 피곤하다. 다른 생각들도 많은데 아픈 것들 고치느라 잠이 더 줄고 있다. 그 탓이 아닐지도 모르고.  


<이미지 출처: 영화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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