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한참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갔다온 다음에 다시 누울 때 얼마나 행복한 지 알아? 이불을 덮으면서 아, 행복이다. 한다구 .
그 말이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시 떠올랐는데, 행복이 마치 매직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다 뭔지 아는데 나는 제대로 모르고 답답한 거. 한 번 본 사람은 계속 보지만 한 번 못 본 사람은 영영 못 보는 거. 행복이 무엇인 지 규정짓지 못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뿌연 안개 속에 감추인 행복을 또렷하게 정의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생각해봤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위해서 행복이 무엇인 지 먼저 또렷하게 새기고 싶었다. 즐거움. 기쁨이 아니라 '행복'이란 단어가 따로 있다는 건 그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건데. 그래서 즐거움. 기쁨과 다른 행복이 대체 뭐지.
한가지 깨달은 것은 행복 의미를 너무 크게 두고 살았다는 것이다. 행복을 무균상태로 이상화시켜서 죽을때까지 닿을 수없는 우주의 별같은 상태로 규정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생 행복하기 위해 살아도 결코 제대로 행복할 수 없는 경주를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정하는 질문을 애초에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지만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행복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무게감은 어떻게 가지느냐는 모든 나라에서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객관성을 가질 수 없는 질문이다. 행복은 세상의 사람 수만큼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은 어떤 의미인 지 모르겠다. 역시 매직아이 같은 행복.
정유정 작가님은 사람은 행복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 말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2살 아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 적절한 실패를 경험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어릴 때는 대부분의 성공과 칭찬 속에서 적절한 좌절을 맛보는 쪽이었다면 적어도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좌절 속에서 적절한 성공이 필요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는 진공상태의 순도 100% 행복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관념이었으니까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른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행복은 인간 존재의 목적도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할 일을 하며 사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매일 11시간씩 쓰시는 정유정 작가님처럼 매일 5-10시간씩 연습하는 최연소 콩쿠르 대상 수상자 첼리스트와 선수촌에서 무수한 연습과 좌절을 이겨내고 메달을 목에 건 국가대표를 존경한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에 매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행복은 지구력과 함께 올지도 모른다.
사람의 존재는 기억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사고로 기억을 잃는다면 그때의 내가 과연 나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서 기억을 지운다면. 그동안 나를 만든 것을 다 지운다는 뜻인데. 내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꼽아보고 그 기억에 묻어있는 감정의 향기를 추출해본다. 치열하게 일하고, 애쓰고, 일하고 성취감을 느낀 기억들이 에센스처럼 모아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류의 인간으로 살아야 더 행복할 것인가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쁜 기억들에서도 의미를 추려본다. 최근에 남은 기억은 주로 '말' 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말들이 죽 그어진 선이 된 것 같다. 속상한 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이 그어버린 선이다. 지울 수 없으니까. 처음 구성을 배울 때 선배가 내 프리뷰 정리 노트를 앞에 두고 알려줬다.
이 중에 맨 앞에 둘만 한 꼭지가 분명히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없을 땐, 절대 맨 앞에 올 수 없는 것들을 차례로 지우면 돼.
그것과 같은 방법으로 내 인생의 맨 앞에 절대 올 수 없는 것들을 지워나가면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 뼈대를 그리면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까.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일까. 나는 한결같이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사실 죽음이란 갑작스럽기 마련이라 인생의 길이를 제대로 가늠할 순 없지만 평균 수명에 비추어 볼 때 내겐 인생이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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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흥분은 도파민 분비를 활성화시키면서 세로토닌 합성을 촉진한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가 그랬던 것 같다. 일상의 흐름을 잠시 끊어내고 새로운 흥분을 주입해주던 여행을 잃은 지 오래고, 뚜렷한 대체제를 찾지 못했다. 이게 과연 코로나 블루이기만 할까. 꽤 오래전부터 내일의 지루함이 걱정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인생 전체가 지루한 C급 영화처럼 느껴지는 병에 걸린 것 같다. 내가 늘 멈춰있다고 느끼곤 한다. 어느 나이 이후로는 정체되어 살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조금 자조해보자면 나는 등속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 사실은 꾸준히 움직이고 있지만 스스로 속도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멈추어 있는 것처럼 느낄 뿐이라고.
우선은, 아직 뭐가 행복인지 여전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동생이 작은 행복 부스러기를 줍는 것처럼 나도 의식적으로 ‘아, 행복이다.’하고 혼잣말이라도 해봐야겠다. 요즘처럼 공기는 차고 서늘한데 이불은 따뜻한 계절에 샤워하고 몸을 누이는 순간에는 그렇게 말하기 참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