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송에서 홍진경 씨가 행복에 대해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자려고 누우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 오르는데, 때로는 생각에 말려 잠들지 못하고 때로는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잠을 잔다. 나이가 들면서 수면의 질과 패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부터는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다시 유아기로 돌아간 듯 다성 수면을 하다가 기상 시간이 통제할 수 없이 빨라지다가 최근에는 부쩍 수면의 질이 나빠져서 활동 시간 동안 피로도가 높아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몸이 예민해진다는 의미고 스스로 세심하게 보살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도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커피를 줄였다. 처음엔 하루 한 잔으로 줄였고 지금은 연하게 한잔으로 줄였다. 수면의 질은 모르겠지만 취침시간을 조금 당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커피가 수면을 방해하는 주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 외 다른 변수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조치는 계속 취해본다. 몸 쓰는 운동을 해보면 수면의 질이 좋아질까? 사실 잠을 망치는 원인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홍진경 씨 말을 대입해보면 나는 자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다. 그것이 수면의 질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친구 중 하나는 내 잠 사정에 관심이 많은데, 그녀는 나의 수면 상태를 ‘증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할 때마다 나의 수면 근황을 체크한다.
내 품에 포옥 안기는 생명체의 온기는 기분을 차분하게 풀어준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미용실 가기 전 알러지 안약을 넣고 코 뿌리개(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부른다.)도 칙칙 양쪽에 뿌리고 갔다. 미용실에는 모모라는 고양이 선생님이 계신데 나는 댕냥이 털 알러지가 있어서 미용실에 머물기만 해도 심한 간지러움과 콧물 공격을 당하고 만다. 그런데 그날 내가 미리 준비하고 간 걸 알았는지 도도하던 모모 선생님께서 내 허벅지 위에 훌쩍 뛰어올라 앉으셨다.
꼬리로 내 허벅지를 탁탁 치며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었고 나는 그에 맞춰 선생님의 등을 살살 쓸어드렸다. 따뜻해지는 허벅지와 손에 닿는 털의 느낌, 제대로 하라고 다그치는 선생님의 소리가 만드는 하모니.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그렇지만 기분은 기분, 알러지는 알러지. 염색을 마치고 거울을 보는데 머리를 해주신 선생님께서 "눈이 너무 빨개요!"라고 하시더니 지르텍 한 알을 기부해 주셨다. '그래도 미리 준비하고 와서 오늘은 참을 만했어요.'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지르택을 받아 먹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릴 때 시골집에서 데려와 삼촌 집으로 보내기 전 일주일 간 우리 집에 머물렀던 재롱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나 귀여웠는지에 대해. 그리고엄마가 다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건 우리 자매가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바랬던 바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개를 키울 수 없는 몸인 걸. 엄마도 알면서 자꾸 개를 키우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동생은 "엄마가 언니가 나가래."하고 정리해 주었다. 내가 빨리 더 많은 재력을 키워야겠구나.
댕댕이를 품에 안고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얼마라도 있다면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적어질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걸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나에겐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신 당장 시도해 볼만한 방법을 하나 찾았다. 좀 전에 생각났는데, 언젠가 선물 받았다가 잊고 있었던 수면 아이템을 좀 써봐야겠다. 안대와 침구 스프레이인데 자기 전에 뿌리고 안대를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선물 받을 땐 의외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를 위한 선물이었나.
어디로 세어 나갈 걱정 없이 바닥을 들춰낸 생각까지 종알거리는 친구들과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마음에 걸리는 스무 개 중 열 개쯤은 덜어냈을 것이다. 더 나은 잠에는 들어주는 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잠 관리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으니 더 많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우선은 춥다고 줄였던 산책 시간을 다시 조금 늘려봐야겠다. 신체 활동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 읽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 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행복한 상태를 위해서는 긴장을 푸는 것도 좋겠다. 그건 죄악이 아니니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