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없는 날이 없었던 20대 중반, 여의도에 자정까지 문을 열어두는 카페는 없었다. 수고로운 하루를 그냥 마감하긴 아쉽고 작은 보상 혹은 하소연 타임이 필요한 우리에게 어둔 밤바다의 등대처럼 불을 밝힌 하겐다즈는 소중한 참새방앗간이었다. 풀리지 않는 편집의 문제를 끌어안고 조연출 선배와 하겐다즈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퇴근과 업무 사이 경계를 그었다. 그렇다고 하겐다즈에 애착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낮에는 절대 하겐다즈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 아이스크림카페가 떠오르는 건 오로지 자정 즈음의 밤뿐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아직도 꿋꿋이 같은 자리를 지키는 하겐다즈를 보고는 나보다 뚝심 있고 내실 있네 생각했다.
20대 초반,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새로 생긴 배스킨라빈스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고3 때 같은 반이었고 졸업한 지 1년이 지나 그곳에서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난 것이다. 나는 파인트를 주문했는데 친구는 쿼터 통을 꺼내 인심 좋은 사장님의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듬뿍 담아주었다. 내가 사장이다.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따로 싱글콘 하나를 더 주었다.
너 이렇게 줘도 돼?
응, 괜찮아. 아르바이트비도 얼마 안 받는데, 이런 거라도 누려야지.
(네가 누린다고? 내가 누리고 있는 거 같은데?)아, 고마워.
또 와. 담엔 더 많이 줄게.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며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시급 2000원이 안되던 시절이었다. 그날 집에서는 친구 덕분에 내 어깨가 으쓱했다. 그녀의 말 때문에 간 건 아니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스크림점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번엔 내가 고른 사이즈와 상관없이 친구는 패밀리였던가 하프갤런이었던가 암튼 그 당시 가장 큰 사이즈의 통을 꺼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거 같다.
자, 뭐로 줄까?
친구의 기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기가 누리는 것도 없이 이렇게 퍼주다니. 그런데 정말 이렇게 퍼줘도 되는 걸까. 나중에 곤란해지면 곤란한데.
민트초코.
그리고 또?
민트초코로 다 담아줘.
가장 큰 사이즈의 민트초코가 가득 든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집에 가서 얼마나 환영을 받았던지. 호의는 언제든 좋지만 갑작스러운 호의는 특별히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미안하네.
지난 연말엔 동생과 폴바셋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내 손으로 감싸면 다 가려질 만큼 작은데 비해 비싼 가격이었지만 동생이 그 맛을 좋아했다. 향도 진하고 좋다고. 향은 나에겐 뭐. 다만 피스타치오가 눈에 띄게 뿌려져 있는 것으로 가격의 합리성을 인정했다. 사실은 동생이 너무 빨리 먹어버려서 나는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사이즈인데 동생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한두 숟가락 떠먹기도 머쓱했다.
아이스크림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건 폴란드 여행에서였다. 머리가 하얀 배 부장 아저씨도, 그 옆의 어린 꼬마도, 중년 여성도 흔하게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귀여웠다. "폴란드에는 흔하게 아이스크림 먹는 문화가 있나 봐." 하며 우리도 빠르게 그 문화를 즐겼다.
소프트 콘을 누가 더 높이 쌓는지 내기하듯 높게 올린 아이스크림은 혼자 다 먹기엔 크게 보였다. 한국이었다면 나눠 먹었겠지만 폴란드에서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각 1개씩 먹었다. 매일 한 번씩은 먹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진지한 얼굴로 걷고 있으면 그도 귀여웠다. 손에 아이스크림이 없었다면 하나도 귀엽지 않았을 텐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 것도 귀엽고 그 줄에 서서 바닐라 먹을래? 초코 먹을래? 고민하다가 반반은 없는지 기웃거리다가 그럼 하나씩 사서 나눠먹자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귀여웠다.
그래서 깨달았다. 어른들이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면 귀여워지는구나. 실제로 여행 사진을 보면 그렇다. 엄마도 동생도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을 때나 먹을 때나 맛이 어떤지 물어볼 때나 다 귀엽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미운 사람이 생길 때 머릿속에서 그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순간 그 사람이 귀엽게 보여서 미운 마음이 사그라들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동안만 그렇게 했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종로 회사원 시절에도 종종 오후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다. 편의점 냉동쇼케이스 안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늘 먹던 것 중 하나를 잡곤 했다. 또 다른 여의도 시절엔 미니스톱 콘 아이스크림이 우리 사이에 꽤 유행했다. 점심 식사 후에 미니스톱 소프트콘을 들고 산책 한 바퀴 하는 게 루틴일 때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돌아보니 시원하고 부드럽게 쉼표를 찍어주는 귀여운 아이스크림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우리 집 냉동실엔 아이스크림이 거의 고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31가지 맛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했지만 우리 가족 최애 중 하나인 자모카아몬드훠지가 단종된 것에 이어 SPC 사태가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대신 마트에서는 꾸준히 아이스크림을 산다. 나는 요즘 아이스크림 비시즌 이지만 냉동실의 아이스크림 입고상태를 꾸준히 살핀다.
가끔 작은 선물처럼 냉동실에서 봤던 아이스크림을 대여섯 개 사가지고 퇴근하면 아주 오래전 대용량 배스킨라빈스를 들고 갔을 때처럼 환영받는다. 가끔은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 중 우연히 동생의 원픽 아이스크림을 홀랑 먹어버려서 원성을 듣기도 한다. 그럼 반드시 두배로 갚아 입막음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이 된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즐기는 엄마는 폴란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귀엽다. TV앞에 앉아서 월드콘 과자를 후두두 흘리며 먹으면서도 "엄마는 하나도 안 흘리거든!"하고 발끈하는 모습을 수시로 보게 되는데, 엄마가 만드는 수많은 클리셰 중 가장 어이없고 귀엽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을 들면 사람이 귀여워진다니까. 오늘도 오후에 초코맛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게에 갔다가 동생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음, 좀 전의 문장을 하나 더해야겠다. 아이스크림을 들면 사람이 귀여워지고 환영받게 된다.
차갑지만 부드럽고 녹아 버릴까 마음 쓰여서 먹는 동안 한눈팔 수 없게 만들고, 무엇과도 잘 조화를 이룰 만큼 잠재력이 풍부하고 (일본에는 심지어 된장이나 고추냉이를 올린 아이스크림도 팔 만큼.) 이건 거의 빵에 견줄 만큼 훌륭한 음식인 것 같은데?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할 리는 없지만 혹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빵과 아이스크림 같은 사람이라도 답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지는 말아야 하는데, 동생은 요즘도 자꾸 dessert-free day를 일주일에 한 번은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너는 오늘 내가 사준 초코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었잖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아이스크림에 드리운 다양한 시간을 떠올렸으니 며칠 내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면 하나씩 떠올린 시간의 맛을 함께 느껴봐야겠다. 다만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안 되니까 빠르게. 그런데,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나도 귀여워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심지어 나도 귀여워질 수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