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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ug 21. 2016

엄마에게 과소비를 선물하겠다.

처음엔 얼떨결에 계좌를 개설했고 마침 통장에 갈 곳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 목돈이 있어서 몇 군데 투자했다.(내가 한 것이 투자가 맞는지.) 정보를 물어오는 동료 말에 가볍게 설득당해서(누가 나를 설득한 것은 맞는지.) 늘리다 보니 이젠 나도 모르는 사이(모를 리가.) 상당한 돈이 묶여버렸다. 빵 값이나 벌어보자 시작한 주식 덕에 정말로 빵 값도 벌고 밥 값도 조금 벌었다. (한때는 그랬다.) 호기롭게 밥을 사고 자랑해봐야 엄마는 콧방귀나 뀌었지만, 어쨌든 나의 투자 덕에 우리는 (조금) 거하게 한 끼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이놈의 사드. 그리고 기타 등등. 엉엉.      



최근 엄마를 잘 먹이고 잘 입히는 일에 집착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딸 키우는 엄마처럼 옷가게에서 엄마에게 어울리는 옷을 뒤적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엄마는 피부가 희다. 밝은 옷을 입으면 한층 더 화사해 보이고 분홍색이나 붉은 계열이 특히 잘 어울린다. 내가 엄마를 닮았으면 좀 좋아. 나는 이렇게 까맣게 낳아놓고. 혼자 하얘서 좋겠네. 흥.     


면 티 종류는 가급적 피한다. 엄마 나이엔 우아함이 필요하다. 어디 가서 꿀리지 않게 격조 있는 것이 좋다. 실크라든지 적당히 나풀거리는 레이스라든지, 부인들이 좋아하는 물감을 대충 흘린 것 같은  무늬들이 새겨진 옷. 문제는 그런 옷은 비싸다는 것이다. 젠장.      



먹는 것도 중요하다. 작년에 결심했다. 앞으로 먹는데 돈을 더욱 적극적으로 쓰겠다고. 한 달에 한 번쯤은 엄마를 꼭 맛 집으로 안내하자고. 이런저런 핑계로 매달 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제법 자주 엄마를 대동하고 맛 집에 간다. 10번 중 8번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간다. 그래야 욕을 덜 먹는다. 엄마는 맛에 매우 엄격하고 ‘세상에서 내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가 삶의 모토인 여성으로서 남의 음식에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나마 스파게티랑 피자를 먹을 땐 점수가 후하다.      


최근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은 송도의 ‘지아니스 나폴리’다. 송일국네 삼둥이가 다녀갔다는 식당인데 작은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서 기다린다. 식전 빵도 맛있고 파스타와 피자 모두 맛있지만 엄마는 역시 크림 파스타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참 좋겠다. 내가 엄마 딸이라서. 엄마도 동의했다. 덧붙여 아들만 둘 키우는 이모는 참 안됐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싶어 엄마 영양제와 화장품을 사면서 한 세트씩 더 주문했다.



직구로 주문한 영양제가 왔다. 엄마에게 이모 꺼 하나 엄마 꺼 하나를 주면서 먹어보고 좋으면 더 사려고 작은 걸로 샀다고 설명했다. 며칠 전, 약의 효과가 궁금해서 잘 맞느냐고 확인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응. 잘 먹고 있어. 이것도 미제니? 그런데 네가 이모 주라고 한 거. 이모 안 줄 거야. 내가 먹을 거야. 왜냐하면 이모는 큰 오빠가 병원에서 좋은 영양제 싸게 사서 잘 챙겨주니까 괜찮아.      


(아니, 어머니. 며칠 전에는 이모는 아들만 둘이라 안됐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영양제를 두 개 사서 하나는 이모에게 주라고 했을 때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잖아요. 그건 이제 나쁜 생각이 된 건가요?)아, 응. 그래. 알아서 해.     


엄마가 이모의 영양제를 가로챘다고는 하지 말자. 어쨌든 엄마가 영양제를 만족스럽게 먹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양제는 내가 엄마에게 선물한 첫 번째 과소비다. 달맞이 꽃씨유 하나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네다섯 종류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뭐 이런 걸 사 오니 하던 엄마도 이제 하나라도 약이 떨어지면 당당히 요구한다. 이것이 과소비인가 생각해보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그렇다. 내가 선물하고 싶은 과소비는 사실 과소비가 아니다. 엄마가 진작 누렸어야 하는 것들을 이제야 조금씩 겨우 챙겨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엄마의 길고 굴곡진 인생이 지금쯤은 약간의 보상을 누릴 때가 아닌가. 금은보화는 좀 어렵겠고 (끄응) 먹고 입고 쓰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신경 써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 명품 옷이나 가방도 아닌 것을.



다가오는  10월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 우리 생애 첫 모녀 여행 이기도 하다. 너무 늦어버렸다. 미안함을 씻을 겸 엄마에게 본격적인 과소비를 선물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행 핑계로 가방도 하나 사고, 신발도 하나 사고, 옷도 두어 벌 사고. 잘 먹고 입고 쓰는 것의 기쁨을 좀 누리며 살아야겠다. 엄마도 나도. 다시 생각해도 이런 것들은 과소비 축에 들기 어려울 것 같다. 11월엔 교회에서 집사님들과 함께 가는 제주도 여행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제주도 갈 때도 꿀리지 않게 입히고 두둑이 채워서 보내야 한다. 근데... 돈은 언제 모으지? 도리도리.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는 과소비를 할 수 없어! 월급 타면 부지런히 과소비를 시전 해보자. 고기도 먹던 놈이 먹는다고, 과소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성실하게 연습해야지.     


어제 더위를 피하려고 들어간 백화점에서 가방이랑 지갑을 구경을 하다가 조만간 엄마에게 좋은 지갑 하나 선물해야겠고 생각했다. 엄마는 빨간 지갑을 좋아한다. 정리라는 걸 모르고 살기 때문에 큰 지갑이 필요하다. 크리스마스 즈음 크고 빨간 지갑을 사야겠다. 엄마는 좋겠다. 내가 엄마 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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