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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Sep 11. 2016

어떻게 지내니? 네, 건강해요.

 “세상의 모든 롤 빵이 여기 있소.” 소설 속 이 문장이 참 좋다. 실제로는 하나의 롤빵이지만 세상의 모든 롤빵을 줄 만큼 당신을 위로하고 싶소.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만난 사이에 전해주는 묵직한 위로가 느껴진다.      


“주말에 뭐해요?” 요즘 유행하는 말인가. 타 팀 사람들과 자주 밥을 먹지 않는 편이지만 최근 몇 번의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같은 질문을 들었다.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한 당신이 남들은 뭐하고 사나 궁금해서 묻는 거라면 나는 좋은 답을 줄 사람이 아닌데. 음... 저는 주로....) 주말엔 혼자 놀거나 동생이랑 놀아요.      
(그것도 답이라고.) 아, 혼자 잘 노는구나.     
(그렇죠 뭐, 혼자 잘 놀만한 나이니까 당연히.) 편하기도 하고요.     


그분들이 같은 질문을 할 줄 알았다면 좋은 답을 좀 생각해둘 걸. 어쨌거나 저쨌거나 진실은 이렇다.      


주말이라고 기다려봐야 솔직히 별 거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냥 혼자 돌아다녀요. 발길 닿는 데로 걷다가 단골 카페랑 빵집에 들러 집에 오는 거죠. 저녁엔 밥 먹고 누워서 TV 보면 만고 땡이잖아요. 자매님이랑 나란히 누워서 무한도전 보면 꿀잼이에요. 약속이라도 잡으면 멀리 나가는 것도 일이고 사람 많은 건 더 싫고요. 우리 동네 덜 붐비는 곳을 몇 군데 알고 있거든요. 혼자 놀기 심심하면 집에 계신 자매님과 같이 놀면 돼요. 올여름은 더위가 지나쳐서 실내에만 있어야 했지만 가을이 되면 카메라 들고 다닐만한 곳도 찾아놨어요. 주중엔  사람에 휩싸여 살다 보니 주말엔 사람이 적은 곳에서 피로를 풀고 싶잖아요.     



가끔은 간절히 기다리던 주말인데 늘 가던 곳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지겨운 생각도 든다. 이번 주말에도 익숙해서 좋지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그곳에 갈 참이었다. 아님 좋은 생각이 있을까? 머리를 짜 내다가 전화를 받았다.      

 응, 둥둥 아. 목사님이야. 잘 지내니? 아침 운동하다가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어. 근데 목소리가 힘이 없네? 어디 아프니?     
(네, 목사님. 왜냐하면 지금 사무실이거든요. 회사 밖이었다면 활력 넘치게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퇴근하고 싶어요.) 아, 아니에요. 목사님.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응, 그래. 엄마는 건강 괜찮으시니?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네, 목사님. 그간 제가 참 연락을 못 드렸네요. 제가 그렇죠 뭐. 가까이 있는 사람도 잘 못 챙기고 멀리 있는 사람은 더 못 챙기고 그래요 제가.) 네, 목사님. 추석 지나고 한 번 찾아뵐게요.      


귀신같은 목사님의 전화.(아이쿠, 목사님. 이런 비유는 참 적절치 못한 것 같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요.) 마음에 짐이 생길 때마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엔 거의 연락을 못하고 산다. 목사님도 워낙 바쁘셔서 내 안부 챙기실 틈이 없을 텐데 꼭 먼저 전화를 주신다. 스무 살에 처음 뵌 후로 나이는 자꾸 먹는데 안팎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송구스럽다.      


목사님은 전혀 잊고 사는 이름들의 안부도 전해주셨다. 궁금하지 않은 안부를 뜻밖의 상황에 전해 듣는다. 어쨌든 목사님이 안부를 물으실 때 나는 ‘그냥 잘 지내요. 똑같아요. 그때와 지금이.’ 정도로 근황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이 누군가에게 나의 근황을 전하실 때 ‘아, 둥둥이는 똑같다더라.’라고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니 머쓱하다. 나는 왜 그대로인 것이냐.  

    


아, 둥둥 아. 혹시 만나는 사람은 있구? 둥둥이 몇 살이지?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하하하. 목사님. 물어보셔도 돼요.     


감사하게도 네댓 살 어리게 기억해주시는 목사님께 나이를 정정해서 알려드렸다.      


 목사님이야 말로 목소리가 많이 상했는데요?      
 응. 목사님은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이렇게 저렇게 바쁘게 지낸다. 작은 교회라 챙길 것들이 많잖아.        


곧 목사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3년 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여전하다. 민망하다. 급하게 뭔가 그럴싸한 것들을 생각 좀 해보자. 아 참! 목사님. 저는 살이 조금 빠졌어요. 3년만큼 늙었고요. 성실하죠? 주말엔 카페에서 쓰고 싶은 것을 쓰거나 써지지 않는 것을 쓰기도 해요. 오늘도 그날처럼 글쓰기를 좋아해요. 잘 늘지 않지만 성실하게 쓰다 보면 언젠가 목사님께 '열심히 썼고 이렇게 달라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전화로 드리는 답은 늘 똑같은 오늘이겠지만 오늘 목사님의 전화가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롤빵만큼 무언가 넘실거리며 밀려오는 뭉클한 것이 있었어요.      



3년 후 오늘보다 좋은 답을 드리기 위해 오늘도 저는 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쓰고 있고요. 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제 생활을 한 걸음 멀리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럼 좀 더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시작할 수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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