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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18. 2015

직장인의 로망은 퇴사

9년차 서투른 직장인의 고민

- 어~ 카메라를 사와 가지고. 저렇게 사무실에서 막 자랑하고 난리다. 나도 한 장 찍어줬어. 허허허. 응. 폴라로이드 카메라. 하하하. 거 뭐 싸구려처럼 생긴 걸 들고 일도 안 하고 난리다.


그날 오후에 나는 프로그램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 어디로 가려고 그러니?

- 좀 쉴래요.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하면서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어요. 

- 입봉 하고 싶니?

- 아뇨. 입봉이라뇨. 

- 그럼 다시 생각해라.

-......

- 여기에서 배울 게 더 많다. 더 생각해봐라. 나는 반대다. 

- 네...


대화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밀리는 상황이었다. 혼자 생각할 때 나는 거의 확고했지만 말로 설득할 만큼 확고하지 못했다. 그냥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딱 6개월 만이었고 팀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때부터 프로그램을 흔드는 외압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결국 내가 만 3년 만에  떠나고 한 달 뒤 프로그램도 폐지되었다.) 그동안 틈을 보고 있던 나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오늘 꼭 말해야겠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오후에 팀장님 자리에 앉아서 이런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분명 나는 더 생각해보려고 했고 며칠 지난 후엔 마음 바꾸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팀장님은 대화가 끝이 났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하긴,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시작할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부치는 6개월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고 겁먹은 상태였다. 닭인지 오리인지는 물에 들어 가봐야 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닭인지 오리인지 확신이 없었다. 확신범만 일하는 곳에서 나는 아직도 정체성을 모르고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이후로 나는 세 번이나 프로그램을 떠나겠다고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말했다. 이유는 달랐다. 익숙한 물을 떠나 나를 더 강하게 몰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프로그램을 떠나게 된 것은 팀장님이었다. 세 번이나 나를 잡아줘서 고마웠다. 내가 무언가 시도하고 배우고 생각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고민할 때 이렇게 말했다. 


- 가야 할 길은 지나온 길 위에 있다. 

- 정말 그런가요?

- 그렇다. 내 경우엔 그렇다.


햇수로 5년 만에 나는 지나온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다음 길을 고민했다. 때로는 고민을 미루어 둘 수 있는 좋은 경험에 취해있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10년이 가까워간다. 처음 내 앞가림하겠다고 ‘일’을 시작한 것이. 미국에서는 입사부터 퇴사까지 평균 15번 이직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직장을 ‘장(場)’으로 인식하는 것이 분명하다. 청년실업 문제로 현재 우리나라 구직자는 하루 평균 2.4회 입사지원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매일 2.4번씩 거절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업준비 시절 불합격 통보 메일을 받았을 때의 좌절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건 직장(職場)을 찾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의 쓸모를 확인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정말 내가 쓸모 있는 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다. 나의 가치를 원하는 곳인지, 나에겐 가치 있는 곳인지 서로의 쓸모를 확인하고 싶다. 잠시 몸 담았던 첫 직장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신입사원들을 모아 두고 국장님이 했던 한 마디뿐이다. 앞으로 직장을 옮기고 싶을 땐 세 가지를 고민하라고 했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인 지, 배울 사람이 있는 지, 나 아니면 안 되는 자리인지. 거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재미있는지. 중요한 가치다. 매번 고민하지만 재미와 쓸모에 대한 오랜 고민은 명확한 답도 없다. 15번씩 이직을 한다는 미국인들도 나처럼 고민할까? 방식이 다르겠지? 취업이 어렵다고 난리였던 대학 4학년(그때도 지금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때가 아마 취업난이 장기화되던 초기였던 것 같다.) PC실에서 뒷자리 누군가 친구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 하하, 불합격 메일이 3개나 왔네. 동시에 3군데야. 하하하하하. 


그 와중에 웃는 대담한 얼굴이 너무 궁금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은 대기업에 잘 다니는 대학동창 하나는 그 회사에 가기까지 16군데나 떨어졌다. 거절에 익숙해진 채 어렵게 장(場)을 찾은 후에야 쓸모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뻔한 현실인 걸까? 그냥 나의 현실인 걸까?


일이 뭐라고. 아니지, 일은 무엇이다. 평생 해야 하는 거라면 아주 중요한 무엇이다. 그런데 평생 고민해도 평생 또렷한 해답 없이 나를 휘두르기만 할 것 같은 버거운 무엇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라도 고맙게 느껴지는 씁쓸한 한 달이 벌써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은 오래전 그때처럼 나의 흔들리는 마음에 확신 있는 반대 혹은 이정표를 제시해줄 누군가가 그립다. 나의 쓸모와 발전에 대해 나보다 더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때가 그립다.


다시 월요일이 온다. 나의 쓸모를 빈틈없이 고민하게 하는 일주일을 건너 주말이 올 때까지 성실하게 출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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