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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ug 07. 2017

밥풀처럼

에이, 괜찮아요. 그래도 하루에 열 번은 안 하잖아요.


사회 초년생의 ‘실수’는 백반집 김치 반찬 같은 것이었다. 입사 후 들었던 많은 말 중 기억나는 말이 하나 있다. 야자나무처럼 생긴 거대한 선인장이 시들어가는 흡연실에서 선배가 스르륵 담배연기처럼 내뱉은 말.


잘하려고 하지 마. 실수해도 이상할 게 없어. 선배들은 네가 잘할 거라는 기대를 안 해. 실수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야. 얼마나 좋으니?


지독 위로였다. 선배 말대로 우리들은 매일 실수를 낳았다. 봐줄만한 실수만 하느냐, 치명적인 실수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중대한 실수만은 하지 말자고 매일 다짐했다. 내가 얼마나 구멍투성이인지 가장 잘 알고있으므로 누구보다 불안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친구는 PD가 실수를 지적하자 이렇게 되 받아쳤다.


에이, 괜찮아요. 그래도 하루에 열 번은 안 하잖아요.


당찬 배짱에 PD는 허허 웃고 말았다.


허, 허허, 허허허허. 그래, 다행이다.
에에이, 막내들이 다 그렇죠 뭐. 하루에 열댓 번 씩 실수하고 그러는 거죠. 그래도 전 열 번은 안 하잖아요.


이런 똑똑이를 봤나. 나는 상상도 못 한 혁신적인 답! 이 녀석. 좋은 작가가 되겠군. 그때 생각했다. 역시 떡잎부터 달랐던 친구는 거칠게 자라 작가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주제 파악이 빨랐던 나는 일찍이 직업 교체를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적당한 시기에 좋은 선택을 했다. 인생에서 잘한 선택이 몇 개 없는데, 그중 확실한 두 개가 있다. 방송 작가가 된 것. 방송 작가를 그만둔 것.


열 번씩은 아니지만 친구도 나도 실수투성이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 맞춤법, 띄어쓰기, 오타 확인은 그때도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꼭 내 눈만 피해 가는 녀석들. 왜 두 번 세 번을 봐도 안보이다가  팀장님 손에만 넘기면 뿅 나타나서 ‘케헤헤헤-또 속았지.’하고 음흉하게 웃는 것인지 얄미워 죽을 맛이다. 원고와 보도자료를 읽는 팀장님 옆에 서서 나를 향해 고개를 쏙 내미는 얄미운 오타들.


네 이놈들!!! 가만 안 둬.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제발! 제발...


그러나 여지없다. 요놈들은 금방 들킨다. 팀장님의 노란 색연필이 다가간다. 동그란 그물을 만들어 잡아 올린다.


둥둥 아. 나는 원고를 보는 사람이지 오타를 보는 사람이 아니다.


팀장님이 점잖게 한 마디 하실 때 내 얼굴은 이미 활활 불타고 있다. 그때는 책임진다는 게 두려웠다. 막내라서 실수를 해도 파급력이 크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조금 번거로워지면 그뿐. 그래서 입봉 하기 싫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바람이었다. 두려워도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실수에 관대한 사람들과 유독 심하게 꾸짖는 사람, 실수 아닌 것까지 트집 잡는 사람들이 모두 곁에 있었다. A4 1장짜리 보도 자료를 종일 10번 넘게 고쳐 쓴 날이 있었다.


그날 쓴 보도자료는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첫 번째로 기억하는 아이템이었다. 처음 편집 구성안을 받아보고 ‘음, 어렵지 않겠군.’ 하고 생각했다. 취재도 잘 되었고 흥미로운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예상을 빗나가서 종일 10번도 넘게 고치고 또 고치고 나중엔 내가 쓰고 있는 게 반성문인지 보도 자료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날 일기를 쓸 정신이 있었다면 ‘곤죽이 되었네.’라고 한 줄 적었을 것이다. 보도 자료를 쓰기 며칠 전 선배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일부러 트집을 잡은 것이라는 뒤늦은 심증이 생겼다. (너무 늦은 심증이군. 10년이나 지났잖아.)


시간이 갈수록 실수를 짚어주는 사람이 줄어든다. 책임이 커진다. 부담이 늘고 스트레스도 늘어난다. 그런 것이 다 월급 값이지 뭐. 가끔은 그때처럼 보도자료 내밀 듯 ‘제가 한 거예요.’하고 옛 팀장님께 결과물을 보여드린다. 그럼 팀장님은 이건 그 프로그램 냄새가 난다고 웃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때 배운 냄새를 빼지 못한다. 혹은 그건 실수로 다져진, 뺄 필요 없는 소중한 자양분일지도 모른다.


실수투성이 나를 참고 가르쳐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말도 안 되는 촬영 구성안을 비웃지 않고 성실하게 그림을 찾아준 조연출 선배.  구성안을 받고 얼마나 어이없었을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첫걸음을 배운 순간은 기억에 선명히 자국을 남긴다. 5번 편집실. 편집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음악과 편집의 교차를 설명해주고, 리듬감에 대해 설명해줬던 것이 기억난다. 배경에 깔았던 음악은 Mika 의 ‘Ring ring’이었다.


지금도 나는 실수를 당연히 여기며 산다. 나의 실수도 누군가의 실수도. 내 입가엔 실수가 밥풀처럼 붙어있다. 그래서 내눈에 보이기 전에 남들이 먼저 본다. 실수한 주제에 뻔뻔하게 군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늘 생각한다. ‘밥풀처럼 붙어있다. 실수가.’ 그리고 내 실수를 말없이 견뎌준 사람들만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처럼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읽은 책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보와 미치광이들은 언제나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반면 현명한 사람들은 자기 의심에 가득 차 있는 데서 비롯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평생을 가도 완벽히 오타를 잡아내는 데는 영 실패할 것 같다. 맹세컨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내 밥풀이 너무 크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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