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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ug 02. 2017

그 사건의 결말은?

소설에 총이 등장하면 방아쇠는 당겨져야 한다고 체호프가 말했다. 어떤 감정은 등장하는 순간부터 격발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운명처럼. ‘토니와 수잔’의 한 문장은 이렇다. ‘나쁜 엔딩은 모든 걸 망치지만 좋은 엔딩이 어떻게 되는 건 지 우리는 모른다.’ 좋은 엔딩이 뭔지 정말 모르겠다.


온유한 미소로 감정을 잘 정리할 줄 아는 사람, 고요한 내면과 깊은 성찰을 지닌 사람은 진작부터 내 길이 아니었다. 한 때는 동경했던 선배를 닮고 싶어서 애를 써보기도 했다. ‘이럴 때 언니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아.’ 하고 안간힘을 썼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보며 나는 언니를 닮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닮고 싶었던 선배는 잔바람에 파도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나는 잠시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크게 요동쳤다. 그런 걸 다른 말로 예민하다고 한다. 나는 그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동생이가 나보다 훨씬 예민하지.’라 생각하고 있는데 얼마 전 동생이가 이런 말을 해서 적잖이 놀랐다.


언니는 예민한 사람이야. 사춘기 시절에 정말 TV 드라마에서 보던 에피소드가 우리 집에서 벌어지더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3번 해.”라고 했잖아.
(참 나. 너에 비하면 난 무던하고 순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규칙 한 번도 지킨 적 없잖아.) 내가 그랬나?


우리 집 공식 성질꾼인 동생이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억울했지만, 또 그렇게 억울할 일도 아니기 때문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처럼 무디고 눈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 같은 자매를 낳았는지 신기하다. 예민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등호로 연결하는 건 너무 쉽다. 너무 잦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들을 나열하는 것도 참 쉽다.


출근길부터 나는 나쁜 사람일 수 있다. 환승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으로 끼어들기를 하려는 남자를 끝까지 끼워주지 않았다. ‘꼭 내 앞에서만 그런 일이 있어. 나를 우습게 보는 건가.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괜한 자격지심 때문일 수도 있다. 머그잔으로 주문했는데 벌써 세 번째 종이컵에 음료를 담아준 스타벅스 직원에게 "머그컵 주문했는데요."라고 굳이 말하고 이미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머그컵으로 교체해달 번거로운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일들은 귀엽기나 하지. 말 못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깝게 생각하면 별나고 까탈스럽다고 몰아 부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런 성격을 다잡으며 살기란 쉽지 않다. 나는 예민한 나쁜 X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닥친 어떤 사건들은 시작될 때부터 격발 될 수밖에 없는 감정을 품고 있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말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총을 등장시키라고. 한동안 사건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이제 총을 등장시켰다. 그것이 격발 될 수밖에 없는 총알을 가지고 있는지, 좋은 엔딩일 지 나도 모른다. 방아쇠를 당겨봐야 알 수 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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