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좋은 점은 사무실의 소음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는 점뿐이다. 아! 하나 더 있다. 냄새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사무실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조용한 시간을 공략하는 사람들이 있다. (놀라운 것은, 아니 놀랍지도 않은 것이 그런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트림을 하고 부욱-하는 소리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웬만하면 조용히 미간을 구겼다 펴는 정도로 그치지만 지하철에서 하이힐 뒤축으로 발을 꾹 밟고도 모른 척하는 여자를 만났다거나, 그런 여자를 만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한 날이라면 스스로를 누르기가 매우 어렵다. “왜 그러는 거죠?”라고 물으면 “어휴. 사무실에다 트림과 방귀를 발사하려고 밤새 겨우 참았어요.” 하고 대답할 것 같아서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소리에 예민한 타입이지만 후각이 형편없어서 냄새 잡아내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내 후각이란 것은 상한 찌개 냄새 가려내는 것도 버거워하는 정도인데, 한 번은 퇴근 후 냄비 가득한 동태찌개를 후루룩 후루룩 맛있게 먹었더니 엄마가 남은 찌개를 그대로 개수대에 버리는 게 아닌가.
엄마, 왜 버려?
응, 상했거든
뭐라고! 근데 왜 말 안 했어?
응, 잘 먹길래 넌 괜찮은 거 같아서.
내가 찌개를 푹푹 퍼먹는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생이와 엄마는 나를 혈육이 아니라 상한 음식 잘 먹어치우는 신기하고 고마운 생물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닐까?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고 엄마의 예측대로 그날 밤 아무 일 없이 잠도 잘 잤다는 것은 유감이다.
아무튼 이토록 후각이 취약한 생명체라 냄새를 감지할 일은 별로 없다. 다만 청각 세포를 자극하는 그 소리. 언젠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 뒤통수를 한 대 차지게 때리면 몇몇 사람은 일어나 박수를 쳐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행랑채 머슴처럼 문간 자리에 앉아 있으니 온갖 소음의 공격을 피할 방도가 없다. 하필 이런 곳에 앉게 되다니. 그리고 하필 이 사무실엔 목청 크고 수다 많은 사람도 많다. 확실히 10층에 온 후로 업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물론 사무 공간 내에서만 소리와 냄새 공격이 쏟아지는 건 아니다. 화장실에서도 방심한 틈에 몇 차례 공격을 당했다. 사무실을 7층에서 10층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10층 화장실은 7층보다 건조하고 쾌적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날도 기분 좋게 막 양치를 시작했을 때였다. 이제부터 그분을 M이라고 하자. 왜냐하면 그분은 M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나를 발견한 M은
안녕하세용
사뭇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입 안 가득 치약을 물고 있던 내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하고 망설이는 사이 ‘대답은 필요 없어요.’라는 듯 휭- 화장실 왼쪽 칸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때 막았어야 했다.
잠시만요! 양치를 끝낼 수 있도록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요!
불행하게도 입 안 가득 거품 때문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M의 공격은 당당하게 포문을 열었다. 타인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소리와 냄새를 거리낌없이 공개하는 게 다 큰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은 아니라고 배웠는데. M은 나와 다른 것을 배운 모양이다. (이것이야말로 신 자유주의인가? 혹은 자연주의.)
방금 ‘안녕하세용’ 인사를 해놓고 이렇게 안녕하지 못한 일을 만들어주시다니. 우리 그런 내밀한 것까지 공유할 만큼 가깝지 않잖아요! 제발, 제발요!!! 당황한 손이 입천장과 볼에 헛손질을 반복했다. 입 주위가 거품으로 엉망이 되는 동안 계속된 무차별적 냄새와 소리 공격. 그 사이 M은 "음!"하며 본인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혼비백산해서 겨우 양치를 마치고 거북한 속내를 참으며 손을 씻는 동안 M은 놀라운 속도로 일을 마치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왔다. 그리고 ‘세균도 생명인데 죽일 수 없잖아.’라는 듯 손을 씻지 않고 나가버렸다. 그 현장에 나 혼자였다는 것이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오, 맙소사! 하나님, 저는 앞으로 M과 악수 같은 걸 하지 않겠다고 오늘 맹세합니다. 혹시 그녀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연다면 누군가 그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을 열고 나가지도 않겠어요.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 불행한 경험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인간 몸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교육을 아주 어릴때부터 받고 자란것 같다. 방귀와 트림을 공유하려는 직원과 그녀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쓸데없이 예민해서 그런 일에 얼굴 찌푸리는 사람은 이해 못 할 어떤 가치관을 서로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식수위생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화장실 설치와 손 씻기이다. 손 씻기만 제대로 해도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거의 절반이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M이 꼭 알았으면 하는데. 우선 나의 보건위생을 위해 M과의 손 접촉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할 것이다. 여름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