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마다 엄마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우리애 잘 봐주세요 같은 게 아니었다. "선생님, 제가 시력이 나빠서 뒷자리에 앉으면 칠판이 잘 안 보여요."란 말을 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엄마가 나서야 했다. 나는 하필 키가 커서 엄마가 그렇게 나서지 않으면 맨 뒷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숫기가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할래. 별 말도 아닌데. 이번엔 꼭 직접 말해.
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나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막 처음 만난 선생님에게 아쉬운 사정을 얘기한다는 게 내내 어려웠다. 잘못한 것도 없이 두려웠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기엔 초등학교 내내 "반 여자애들 중에 제일 큰 애."로 너무 빨리 각인되는 편이었다. 불행한 일이지.
어린 날부터 주욱.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익힌 습관들이 있다. 회의시간엔 늦지 않는다. 늦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시선을 받기 싫다. 지나치게 일찍 가지도 않는다. 자리는 구석이 좋다. 자주 가는 장소엔 애착 이불처럼 애착 구석이 있다. 단골 커피숍의 애착 구석은 인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뜸한 시간을 알아두었다. 무리로 뭔가 해야 할 땐 뭉그적대지 않고 대열의 2/3 지점에 재빠르게 자리 잡는다. 느림보 짓하는 사람이 꼭 시선을 받는 법이다.
수다는 작은 소리가 좋지만 가까운 이들과 만날 때 소리가 커진다. 그럴 땐 스스로 나무란다. 시끄러워서 눈에 띌 경우 좋은 시선을 받기는 힘들다. 함께 있는 이의 목소리가 크다 싶으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다. 혹시 우리를 노려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새로 들어간 팀의 H는 그런 면에서 나와 잘 맞는 편이다. 우리는 어떤 대화든 주로 속삭이고 있다.
점심에 뭐 먹을래요? 요기 앞에 새로 생긴 MSG 없는 된장찌개 괜찮데요.
좋아요. 우리 조금 일찍 나갈까요? 늦으면 줄 서야 하니까.
같은 말도 독립운동가들의 접선 현장에서처럼 나지막이 속삭인다. 가끔은 거의 수화처럼 손짓까지 섞어가며 최대한 소리를 죽인다. 작은 사무실이라 직원 모두가 우리의 점심 메뉴 선정에 의견을 내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최대한 작은 소리를 내려고 한다. 정 반대로 모두를 대화에 끌어들이고 싶은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이 주로 내 뒷자리에 앉아있다. 그래서 J와 나는 자주 회의실로 들어간다. 우리가 회의실에 자주 들어간다고 느꼈는지 뒷자리 여인 중 하나가 자꾸 묻는다. 거기서 뭐해요? 지금 뭐해요? 바빠요? 일 많아요? 회의해요? 등.
"혹시 거기에서 노는 거 아니지?"의 변주처럼 들리는데. 그런 거 아니겠지? "혹시 거기 우리가 시끄러워서 들어가는 미안한 상황은 아니죠? 그럼 너무 미안하니까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가 맞다면 좋겠다. "너무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 없거든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나도 그저 "같이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라고 했다. 서로 진짜 의도를 알아서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다지 좋아하는 대화방식은 아닌데. 얘기가 옆으로 흘러버렸다.
나는 벽지처럼 지내고 싶어.
자주 하는 이 말처럼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정말. 사무실 생활에서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익힌 습관들이 많다. 걸을 때 발소리에 신경 쓴다. 사무실 한쪽, 바닥 타일이 살짝 꺼져 밟으면 덜컹 소리가 나는 자리를 피해 뱅 돌아 걸어 다닌다. 머그컵 아래에는 반드시 코스터를 두어 책상에 도자 컵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지운다. 커피 마실 때는 호로록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의식하지만 뜨거운 첫 한 모금을 확인할 땐 어쩔 수가 없다. 개인용품은 최소화한다. 물건이 차지하는 자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눈에 띌 것 같다. 절대 주목받고 싶지 않다. 나는 시선을 받으면 멍청해지는 기재를 타고난 듯싶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쓸 때는 말도 함께 줄어든다.
오늘 점심엔 H가 물었다.
둥둥 님 K님이랑 따로 얘기 나눠보셨어요?
아뇨. 몇 번 다른 분들이랑 점심 먹을 때 말고는요. 사실 사무실 누구와도 일 외적으로 따로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어요.
아. 그렇구나.
이제 한 달째 다니고 있는 회사. 말을 많이 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서로 간의 거리가 정해지겠지. 사람들은 말이 참 많다. 신규로 들어온 인력이 많다더니 서로 많이 어색한 사이라 대화 중에는 의미 없는 말들도 많다. 의미 없는 대화가 많이 오가면 친밀해지고 그러다 보면 의미도 생기겠거니 하고 지켜본다. 나는 정말 H 외의 다른 직원들과 업무 외 대화를 거의 해보지 않았다. 낯가림도 있고 그런 경우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제 퇴근길에 약 50m쯤 옆 팀 직원과 함께 걷게 되었다.
둥둥 님, 요 근처에 칵테일바 괜찮은 곳이 있어요. 언제 H님이랑 셋이 퇴근하고 가봐요.
네, 좋아요.
칵테일 바라. 친해지기 위해 가야 하는 건지, 친한 사람들끼리 가는 건지. 남자들은 친해지기 위해 목욕탕에 같이 가고 여자들은 친해지면 목욕탕에 같이 간다는 오래된 농담이 생각난다. 칵테일 바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처럼 우리는 아직 맞춰가야 할 것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그건 '회의실에서 뭐해요' 대화처럼 진의를 숨긴 고민이다. 실은 '칵테일바에 함께 가서 편하게 대화할 만큼 우리가 친해져야 할까' 가 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부잡한 생각을 하다가 동생을 만나 정동길 근처 당근케이크집을 찾아갔다.
최근에 '퇴근하고 같이 맥주 한 잔 해요', '우리 집에 와인 좋은 거 있는데 같이 와서 마셔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 갈래의 생각이 든다. 고맙다. 어색하다. 불안하다. 초라해진다. 익숙한 것들을 찾고 싶다. 용기가 나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 긴장된다. 제법 의연하다가 또 불안하다. 어쩌면 순진한 고민이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같은 말일 지도 모르는 것을.
그 사람이, 둥둥 님, 퇴근하고 디저트 맛있는데 같이 가요.라고 했으면 네! 좋아요! 했을 텐데. 안타깝네.
맞아. 칵테일바라니...
낯선 땅에 와서 처음 언어를 배우는 이방인처럼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빨리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어서 우리 사이 공통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차이점이 먼저 마음에 걸린다. 모두와 쉽게 친해질 수 있고 경계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 평범한 걸까? 나는 그런 일이 어색하고, 경계가 분명한 편이 좋은데. 그렇게 가만히 눈에 띄지 않고 지내고 싶은데.
지금은 H와 속삭이듯 대화하면서 퇴근 후 그녀가 권하는 공연을 함께 보고 팀원들과 한강에서 맥주 마시는 약속을 수락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 정도만 해도 이미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칵테일 바에 가고 맥주를 마시면서 우하하 놀다가 그 집에 잠들어서 함께 출근하는 일은 언젠가 편하고 익숙하고 혹은 즐거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 익숙하지 않다. 많은 것이.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니까. 그렇지? 나는 항상 시간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