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커뮤니티에 한 고민이 올라왔다. 17개월 아기가 요즘 왜 그러는지 밑도 끝도 없이 울고 짜증을 내서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주로 '이 앓이' 내지 '원더윅스'를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댓글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 앓이나 원더윅스를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은 그 자녀들이 순한 아이이기 때문일 거예요. 저희 아이같이 까다로운 기질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툭하면 저 상태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졸린 것과 연관 있습니다. 잘 재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세요. 잠만 푹 자면 훨씬 나아집니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나로선 200퍼센트 공감하는 말이었다. 방금도 한바탕 했다. 고망이는 목욕하지 않겠다며 목이 쉬도록 울고 누워서 버티기를 하다가 급기야 허리를 방방 들어 올렸다. 엑소시스트가 따로 없었다. 이건 목욕하기 싫다는 떼쓰기가 아니라 '잠투정'이다.
우리 어린이집 5세 반은 낮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초기에는 하원하는 길에 차에서 잠드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건 오히려 낫다. 조금이라도 자니 밤잠을 일찍 자지는 못해도 잠투정은 안 한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8시까지 어찌어찌 버티는 날이 왔는데 그러면 잠투정이 무시무시했다. 간혹 그냥 쓰러져 자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감사한 날은 드물었고 고막이 아프도록 울고 논리로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떼가 길게 이어졌다. 졸리다 보니 예민함이 올라가 감각적인 불편함도 증폭되는 모양인데 그런 상태에서 목욕하기나 양치질 등의 '강요'가 들어오면 샴푸의 거품이 싫고 애착베개가 건드려지는 것에도 폭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종교도 없는데 '사탄아 물러가라', '오 주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육아의 모든 영역이 쉽지 않지만 '잘 재우기'는 아이와 양육자 모두의 삶의 질을 좌우하기에 중요한데, 참으로 오묘하고 어렵다. 패턴이 잡히는 듯하다가도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긴다.
"그러니까 한번 찾아봐. 육아 책에 제일 많은 주제가 재우기에 관련되어 있어."
언젠가 육아 선배님이 그랬다.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육아 커뮤니티를 보면 매일같이 '잠과의 전쟁'을 토로하는 글들이 도배된다. 그리고 세돌이 되어도 통잠을 못 잔다든지 매일같이 새벽에 깨서 달래 지지 않는 통곡을 한다는 둥 상상만 해도 힘든 사연들 끝엔 '죽고 싶다', '돌아버리겠다'라는 격한 표현들이 실려있다. 진짜 과장이 아니라 잠 고문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고망이는 정확히 생후 97일부터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백일의 기적을 보여준 거다. 낮잠은 한 번에 30분 정도로 조각조각 나눠잤지만 밤잠만은 그렇게 자줘서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살게 해 줬다. 나는 그날 이후로 한결 이성적으로 이야기하고 감정을 조절했으며 나름 명료한 정신으로 낮 육아를 이어갔다. 그것으로 수면 고민이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육아는 성장의 고비고비마다 전혀 다른 국면의 고민 거리를 던져주니까. 그 후로는 오래, 입면入眠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이른바 '등센서' 아이로 한참을 품에서 자다가도 바닥에 눕히기만 하면 눈을 떠서 경악하곤 했다.
그건 또 나름의 수면 교육을 통해 해결했다. 이른바 퍼버법을 따른 것으로 일정한 시간에 눕혀 잘 시간이라고 말해준 후, 백색 소음을 틀고 자지러지게 울더라도 바닥에 눕혀서 토닥이기만 하는 것이다. 백색 소음으로 시작된 자장가 요법은 고망이의 입면을 돕는 데 적어도 첫돌까지는 꽤나 유효했다. 유튜브에서 찾은 '정확히 몇 분 후 잠이 든다' 영상이 정말 마법같이 고망이에게 먹혀 수백 일간 위기를 모면했다.(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그리고 백색 소음에 바통을 이어받아 '섬집 아기'와 '밤편지'가 나머지 수백 일간을 도와주었다. 이 두 곡을 나는 적어도 천 번쯤은 불렀지 싶다. 그래서 섬집 아기가 워킹맘의 애환이 담긴 노래였다는 것도 깨달았고, 밤편지는 내 18번이 되었다. 고망이가 말이 트인 어느 날 밤 갑자기 노랫가사를 따라 불러 나는 반복된 리스닝 효과도 깨달았다.
두 돌쯤 낮잠이 1회로 줄고서는 낮잠과 밤잠 간의 밸런스가 더 중요해졌다. 낮잠의 시기와 시간에 따라 밤잠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낮잠을 일찍 자고 너무 길지 않게 자야 밤잠을 일찍 자 그것이 올바른 육퇴에 중요했다. 오후 3시 이후에 자면 밤 10시를 넘겨도 말똥말똥한 경우가 많다는 게 정설이라 그전에 재우기 위해 아기띠를 하고 바깥을 돌거나 차에 태워 도는 일도 많았다. 그 시기쯤은 육아동지들끼리 낮잠은 성공적으로 재웠냐는 이야기로 안부를 묻곤 했다. 나는 해외에서 더 핫하다는 포대기를 종종 이용했는데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아기띠보다 재우는 데 더 효과가 있었다.
두 돌 전후로 고망이의 숨겨진 예민력이 점점 뿜어져 나왔다. 브로콜리랑 토마토를 뜯어먹던 아이주도이유식이 무색하게 채소에는 일절 손도 안 되는 편식가로 변했고, 실컷 차나 유모차에서 재워도 방에 눕히면 벌떡 깨버리는 등센서 부활로 나를 환장하게 했다. 밤잠의 입면도 쉽지 않았다. 불을 끄고 잘 눕는 듯하다가도 침대 위를 날뛰었고 가드를 밟고 올라서서 창문틀을 붙잡고 창밖의 달을 바라보는 등 늑대소년을 연상케 하는 기행으로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밤잠 시간은 9시였던 것이 점점 뒤로 밀리더니 낮잠을 3시에 자도 11시를 종종 넘겼다. 그리고 어느 주간엔 매일같이 한 번은 새벽에 달래기도 힘들게 울다가 잠들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우리 육아동지들의 단톡방은 환하게 깨어있었는데 대게 주제는 "얘 왜 안 자는 거지?" 내지 "얘 왜 깨고 난리지?"였다. 그중 잠이 유독 없는 친구 하나는 낮잠을 별로 안 자도 새벽 1시는 돼야 잠들어서 밤중에 늦게까지 여는 마트나 놀이터에 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각성 탓에 온 집을 뛰어다니니 울며 겨자 먹기로 에너지를 빼고자 밤마실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에너지를 빼고 돌아오는 차에서 잠드는 것이 그 아이의 루틴이었다. 참 웃지 못할 일이었다.
고망이도 한 시기는 자정이 돼도 잠이 안 들어 그 친구처럼 밤마실을 했다. 어딜 가서 뛰어노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한 드라이브를 했던 거다. 잘 시간이 돼도 안 자던 고망이는 차가 도로 위를 천천히 달려 나가면 눈이 슬슬 감겼고 밤이 늦은 시간에는 다행히 자리를 옮겨도 잠에서 깨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우린 나름 밤 드라이브를 즐겼다고 위안했다.
수면교육과 자장가 요법, 밤 드라이브 요법을 통해 고비고비마다 재우기의 어려움을 나름 해결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 닥친 잠투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뭐, 아직 내 고막에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요란하게 울어도 목이 종종 쉬는 것 외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20분 여를 내가 잘 참으면 된다. 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별말 없이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녀석은 잠이 들고 별일 없어(온도 습도, 컨디션 양호하다는 전제) 오전 7시 반 이후에 눈을 뜨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사탄을 쫓아내고 누워있는 천사다. 하지만 와 심하다 싶은 경우는 영상을 찍어뒀다. 나중에 알아서 자는 시기가 오면 꼭 보여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