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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소중하다

이번엔 지나간 일기로 때울게요

by 펑예

오늘은 한파주의보도 뜨고 해서 고망이를 등원시킨 후 집에만 있었다. 등원 전쟁을 치르면서 보험사, 세무사, 가게 예약 전화를 받고 처리하느라 잠시 정신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모든 것이 소강상태가 되었다. 갑자기 그런 순간이 되면 수감 생활을 마치고 갓 나온 죄수처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관 앞에서 정확히 1분간 그대로 서 있었다. 뭔가 할 일이 있을 텐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뱃속이 울렁울렁, 불안감이 끓었다. 하릴없이 책장을 뒤적이다 일기장을 찾아냈다. 요거다 요거.


웃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일기가 너무 재미있다. 대체로 "힘들다~ 화가 난다!"가 주제고 그다음으로 빈번한 주제는 "나는 멍충이고 구제불능 루저."다. 22년에는 특히나 그렇다. 온통 육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짠할 수 없다. 내가 짠하고 J는 골칫덩이에다 웃기는 빌런. 그야말로 '내 인생 망치러 온 구원자'.


그때는 쏟아내듯 써선지 이렇게 다시 보면 새로운 구석이 많아 흥미롭고, 이랬단 말인가를 연발하게 된다. 너무 솔직해서 오그라들고 창피한 구석도 있지만 꽤 멋진 생각을 했네 싶은 부분도 있다. 그 당시엔 감정이 앞서서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쓰는 것으로 푼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일정한 시간 후에 읽어보니 자아성찰이 아주 되고 피의자(주로 J)에게도 들이밀어 성찰을 강제할 수 있다. 이것이 기록의 큰 가치겠지.


아주 짠한 어느 날의 글 하나 올려본다.





새벽에 눈을 떠서는 곧장 울적해지고 말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불빛 그리고 날카롭고 불쾌한 통증. 인후통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J도 여태 오지 않았다는 의미.

아마도 통계상 J는 차속에서 잠이 들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불쾌함이 가시는 건 아니다. 다행히 고망이는 약간의 기침은 했지만 잘 잠든 상태다.

늘 기를 꺾는 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체되거나 악화됨은 나를 쉽게 절망케 한다.

어린이집보다는 당장 놀이터에 가고 싶어 동네가 떠나가도록 우는 고망이를 등원시키고 동네 사랑방 카페에 J와 마주 앉아서는 엉엉 울기까지 했다.

올 상반기가 온통 감기, 감기, 감기로 잠식된 듯했고 나는 퇴물 경주마처럼 초라하게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고작 감기지만 감기에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늙고 병들고 약해져 간다는 실감은 참 절망스러웠다.

작고 근력도 하나 없는 데다 말도 못하며 심성까지 여리지만 적의 약점을 단숨에 파악해 찌를 줄 아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봇지를 만든 데스파처럼 고망이를 키워야 하는데. 데스파 같은 마법사에 가까운 능력자가 아니라도 최소한 그 모든 길을 만들고 지지하고 기다리고 응원하는 카게는 돼야겠는데 말이다...


2023년 5월 16일




23년 고망이의 얼집 입소와 함께 감기를 달고 살던 시절의 일기다. 몸이 후들거리니 마음도 아주 휘청거렸다. 게다가 고망이의 발달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고. 어쩌면 이때까지도 코로나블루가 이어졌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봇지, 데스파, 카게... 무슨 애니메이션을 본 건 확실한데,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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