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있는 엄마를 위하여
"너무 끌려다니는 거 아니냐"는 말을 가끔 듣곤 한다.
고집이나 주장이 강하고 표현 역시 강성인 고망이의 행동을 휘어잡기보다는 맞춰주느라 쩔쩔매는 내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 육아 방침은 '안전과 민폐'라는 울타리를 두고 그것을 넘지 않은 행동이라면 거의 허용하자는 주의다. 워낙에 매사 주장과 의지가 있는 녀석이라 일일이 제한을 두기는 어려웠고 본성과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내 가치관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딜레마긴 했다. 안전과 민폐라는 어찌보면 확고한 요소에도 기민한 감각이 필요한데 둔하게 어떤 것은 놓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나름대로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고 했지만 남들(주로 가족들)의 눈에는 불명확해 보일 때가 있었고 그런 지적을 몇 차례 받다 보니 자연 눈치를 보게 되었다. '오냐오냐 키운'이라는 수식어를 듣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주변 육아맘과 비교가 들어가면 더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놀이치료 수업 시간을 기다리며 책 읽기에 빠져있던 고망이. 선생님이 이제 들어오라는데도 싫다며 버텼다. 옆에서 같이 기다리던 친구는 엄마가 "어서 들어가"하자 군말 없이 들어간다. 나는 시계요법(?)을 이용해 45분이 되면 들어가자며 아이에게 시간을 준다. 약속한 45분, 하지만 고망이는 "46분에 들어갈래요." 한다. 나는 마지막 한 번이라며 또 시간을 준다. 그리고 46분이 되었을 때 바로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고망이는 다시 버틴다. 나는 그제야 푸시에 들어간다. 보고 있던 그 책을 하늘 높이 올려서 놀이수업 교실로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럼 고망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들어간다.
들어가긴 했으나 어쨌건 수업 시작 시간보다 2분 늦었다. 친구 엄마는 언뜻 봐도 아이를 굉장히 리드하는 타입이었다. 반항이나 떼는 칼 같이 자르고 수행을 따르게 할 것 같았다. 수업 시작 시간을 지키는 것, 어른이 만들어놓은 체계를 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둘 것으로 보였다. 나와는 아주 반대. 나는 고망이의 기분도 중요하다. 수업 시간, 것도 자신이 모르는 방식의 놀이를 한다는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되는 그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다. 재촉하고 밀어붙이기가 싫다. 기분이 편하지 않아 수업이 재미가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생각되는 마음도 끼어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규칙을 지켜내는 것이 익숙해져야 단체 생활이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에 친구 엄마와 같은 방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뭣보다 '너무 허용하는 엄마네'라는 말이 뒤통수에서 들리는 듯도 하다. 가만보니 생각이 너무 많은 건가.
요즘 고망이는 1일1떼를 시연 중이다. 여기서 1떼는 '아주 요란한' 떼다. 들어줄 수도 없고 설득도 안 되고 20분 이상 지속된다. 잠투정일 때가 많긴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단호하게 훈육하듯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걸 잘했으면 이렇게 긴 떼를 쓰지는 않으려나. 그래서 엄하게 훈육도 해봤다. 그런데 점점 강대강으로 치닫아 나중에 내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이건 최악.
다음번엔 단호한 눈빛과 태도를 취하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건 최악으로 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줄어들진 않았다. 아 모르겠다. 그러다 책 한 권을 우연히 봤다. 아마 제목 때문에 빼어들었을 것이다.
<아이의 진짜 마음도 모르고 혼내고 말았다>
부제는 '서툰 말과 떼 속에 가려진 0-7세 행동 신호 읽는 법'. 그래 진짜 마음이 뭔지 궁금하다. 궁금하다고! 나는 책을 읽을 때 서문부터 정독하는 습관이 있는데 서문의 제목이 또 신박하다. "훈육이 필요한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놀랍지 않나? 제대로 훈육하지 못하면 아이를 망친다고 늘상 듣고 사는 우리에게?
당연히 그런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30여 년간 수많은 가족을 만나 상담한 결과, 모든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육아법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육아법을 잘 따르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 문제는 많은 이들이 아이 자체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데만 지나치게 주목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문제 상황은 결코 건강하게 해결될 수 없다.
이 책은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이 아닌,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아이의 행동과 신체 상태를 관찰하여 아이의 뇌와 신체가 주고받는 신경 신호를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아직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히 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7세 이전 아이들을 대할 때 유용하다."
서문을 읽고 벌써 설득돼 버렸다. 특히 나쁘다고 가르치는 행동을 성인인 나도 하는 걸 떠올려보면 그것은 인지 문제라기보다 신체 상태와 기분(모든 행동의 지도가 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감한다. 특히나 아직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기보다 기분파인 유아 아닌가. 감각이 예민하고 섬세한 고망이의 이유 없는 반항과 대단한 떼쓰기를 진정시키는데 통찰을 얻게 될 것이 기대된다. 그리고 뭣보다 갈피를 못 잡은 나의 육아 태도에 소신을 더해줄 수 있게 되길.
다음 회차는 이 책을 좀더 숙독한 후 쓰는 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