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진짜 마음도 모르고 혼내고 말았다> 리뷰
"집에 가면 알파벳 블록 가지고 놀 거예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던진 그 말. 불안불안해졌다. 고망이가 말한 그 놀잇감은 '분명히' 할머니댁에 두고왔던 것이다. 차를 돌려 할머니댁으로 가 그걸 회수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잠시 후, 역시나 길고 강력한 항의가 시작되었다.
말 자체는 거세지 않지만 어조가 상당히 거셈;
다른 장난감을 들이대고 TV를 보자고 해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한사코 그놈에 알파벳블록을 눈앞에 갖다놓으라고 난리였다.
이런 식의 떼는 정말 혼란스럽다. 너무 반복적으로 강력히 어필하다 보니 컨트롤은커녕 말려들기도 한다. 어차피 할머니댁이 먼 것도 아니니 얼른 가지고 올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다 맞춰주는 게 맞는 일일까. J도 요구사항 다 들어주는 것은 이상하다고 내버려두란다. 하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무반응도 쉽지는 않다. 아무리 타일러도 귀가 먹은 것처럼 구니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고 고망이는 제풀에 지쳐 100까지 세달라며 품에 안겼다. 1부터 100을 세면서 다독이는 것은 두 돌 즘부터 해온 마음을 다스리는 의식이었다.
고망이는 어떻게든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고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생애의 특수한 주기마다 요란한 떼와 고집은 한동안 이어진다. 왜 그렇게 고집부리고 떼를 쓸까. 분명히 알아들을 만한 말인데, 말로는 죄송하다고도 하면서 왜?? 실제로 그렇게 물어보며 다그친 적도 많다. 부모 무서운 줄 몰라서, 우리가 적절하게 훈육하지 못해서일까.
지난주 예고했지만 심리학자인 모나 델라후크의 <아이의 진짜 마음도 모르고 혼내고 말았다>는 이런 고민에 중요한 통찰을 주었다.
저자는 우선 이 '떼' 혹은 '문제 행동'을 신경학적으로 접근하길 권한다. 인간의 신체와 뇌는 항상 같이 작용하므로 생각이나 감정은 신체 상태와 행동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이 시스템을 '플랫폼'이라고 칭한다. 세상에 대한 반응이 수용적이냐 방어적이냐는 것은 이 플랫폼의 상태와 관련이 있다. 플랫폼이 튼튼하면 바람직한 행동이 나오고 취약하면 두려움에 떨며 방어적으로 변한다. 왜 좀 유연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과 예민하고 염려 많은 사람이 보이는 행동의 차이가 크지 않은가. 취약한 플랫폼을 가진 아이들은 경계심이 높고 걱정이 많으며 성미가 까다로운 경향이 있다.(우리 고망이가 여기에 속한다;)
더군다나 사고나 언어 표현이 완전하지 않은 유아이다 보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인지하기도, 그것을 적절히 전달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그저 불편하고 두렵다는 불쾌감만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 선조가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 나왔던 생존을 위한 신체적 반응(현대에는 스트레스 반응으로 이어진)과 상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엔 부적절한 행동(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거나,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을 하는데 이것은 아이가 폭력적이라거나 부모에게 반항하려는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신체 예산'이라는 개념을 꺼낸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신체 예산에 예금 혹은 인출된다. 누군가가 꼭 안아주고 푹 자고 건강한 식사를 하면 예금이 되고 식사를 못 했거나 숙면하지 못하거나 돌봄을 받지 못하면 인출이 된다. 이것도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이다. 허기지거나 잠이 부족할 경우 지나치게 신경질적이 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도 있지 않은가. 어린아이일수록 이에 대한 영향은 더 크다. 고망이의 경우 심한 떼는 푹 자지 못하거나 졸릴 때 나오는 경우가 많고 오전에 일어나 울고불고가 나온다면 얼른 우유라도 먹이면 한결 나아졌다.
2장쯤에서는 내가 이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지, 훈육 모드로 가야 할지, 좀 더 달래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다음과 같은 지침으로 정리해주신다.
"최선의 의사 결정은 아이의 행동이나 생각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신체 그리고 아이마다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부모의 전략이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우리 자신의 플랫폼을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구체적인 매뉴얼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보시다시피 이것은 방향성 제시다. 사실 저마다의 고유성이 있는 아이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육아법이 있는 것처럼 구체적인 지침, 매뉴얼을 제시하는 것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 지금 당장 저 입을 막고 싶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저자는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여 신경학적인 구분을 해보라고 제시한다. 신체가 안전하다고 인식할 때는 '녹색 경로' 안전 감지 시스템이 위협을 감지하면 '적색 경로' 스트레스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세상과의 인연을 단절하는 우울증적인 상태는 '청색 경로'다. 일단 우리가 궁금한 문제 상황이 바로 이 적색 경로다. 방법은 심플하다. 적색 경로인지를 판단하고 녹색 경로로 들어서게 하는 것.
우선으로 진단해야 할 것은 아이보다 '우리' 상태다. 내 상태가 적색 경로라면(신체 예산도 부족하고 아이가 미워보이고 울분이 솟고 평정심을 찾기 어렵다면)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내 상태부터 녹색으로 만들어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뭔가를 마시거나 다른 방으로 가서 마음으로 다스리는 이성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해결된다면 이제 드디어 아이 상태를 바꿔본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아이의 문제 행동이 고통스러워 하는 행동임을 생각하고 비판하지 말고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때 기분이 나아진다. 그러니까 아이를 연민하며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아이의 신경계는 진정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솔루션 '공동 조절'이다. 자기 조절력을 기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인지가 좋고 발달이 빠르다고 조절력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아이를 오해하는 일이 돼버리기도 한다.(개인적으로 '기대'라는 감정은 '걱정'만큼이나 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대는 그 사람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해치고 관계도 망쳐버린다. 기대 대신 필요한 것은 연민이 아닌가 함.)
그리고 취약하게 타고난 플랫폼을 어떻게 강화해줄까? 역시 부모와의 신뢰감 있는 유대 관계가 핵심이다. 어떤 불안한 일이 있어도 엄빠가 나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단단해지면 나뭇가지로 만든 천막이 아니라 벙커(이 시기엔 끌어오긴 좀 그런 비유지만;) 안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이건 우리가 숱하게 들어온 애착 형성의 중요성)
우리는 최대한 위의 행동을 통해 조절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조절력, 더 나아가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적절한 수준의 도전'이다. 아이에게 자기 힘으로 탐색할 기회를 많이 주고 무리하지 않는 선의 스트레스에 노출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에 내성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것이 다 플랫폼 강화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외국 지침서가 좋아하는)L.O.V.E.라는 약어 수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관대하게 바라보고(Look), 판단하지 말고 관찰하고(Observe)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상태를 그대로 인정해주고(Validate), 안전을 경험(Experience)하라.
그 외 몇 가지 희미하게 알긴 했지만 고려할 만한 요소를 명확히 했다. 안전감을 해치는 것 중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정해진 일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로 전환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있는데 고망이 역시 이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이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새롭게 생긴 일정이 있다면 미리 고지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후의 장들은 부모의 플랫폼 강화를 위한 지침, 아이의 감각 체계 이해하기 그리고 나이대 별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고망이가 속한 유아기만 두고 얘기 한다면 조절력이 아직 미숙하고 대부분의 행동이 호기심 추구와 세상 탐색이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안전 등의 한계 설정은 하되 혼내기보다는 인내하며 지켜보라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그 '인내'라는 것이 참 도 닦는 수준의 이야기다. 부모가 보기엔 헛소리를 하고 예의없게 굴고 못된 행동을 지속하는데 그것을 일명 '마음 읽기'로 수용해주고 흔들리지 않은 온화함으로 지켜봐주라니. 육아란 역시 득도의 과정인가. 그래도 과거 나를 환장하게 했던 상황들을 떠올려보면(빵집 가서 빵 사가지고 나오는 것이 대단한 미션이었던) 1~2년 동안 고망이의 조절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비교는 온순한 이웃집 동갑내기가 아니라 과거의 고망이와 하자. 그리고 공동조절에 도움될 온화한 말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버럭하지나 않도록 애써야겠다.
덧붙여,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는 연습을 어릴 때부터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이 부분이 굉장히 궁금하다. 내가 놓친 것인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