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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트랙'에 대하여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남기2

by 펑예

"내 후년에 우리 올망졸망이들이 초등학생이 된다 말이야? 정말 믿기지 않는다."

"연필 쥐고 뭐라도 끼적이는 거 보면 헛웃음 나오기도 하고......"


티타임(지난 회차 참조) 말미에 우리는 초등학교 입학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들은 이미 우리 구역이 속한 N초등학교에 첫째를 보내고 있었고 우리의 올망졸망이들도 당연히 그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딱히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위장 전입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 H초등학교에 가기 싫어서."


H초등학교는 시설은 괜찮은데 해마다 아이들이 줄어들어 이제 시골 학교 수준이 되었다는 곳이다. 사실 나는 그 학교가 숲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이 마음에 들었고 인원이 적은 것은 고망이 입장에서 오히려 더 세심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원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친구도 적고 경험이나 경쟁도 적어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예 학군지로 이사하는 집도 좀 있어."


학군지로 이사? 작년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좀 다르다. 약간 정색하며 털어놓을 것이니 관심 없으면 패스하시길.


소위 '달리는' 교육을 위해 무리한 이사까지 감행한다? 하긴 학군지 이사는 내 학창 시절부터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경쟁 심한 곳으로 와 공부를 더 피 터지게 해야 하는 것 외에 견뎌야 할 게 있다. 호구 조사 같은 것이다. 너네 아빠, 엄마 뭐 하는 사람이야? 너네 집 어디야? 몇 평이야?를 애들끼리 대놓고 묻는다는 괴담이 들려온다.

학군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J 역시 대놓고 당하진 않았지만 청소년 시절 내내 그런 박탈감에 시달려왔다고 했고 또 학군지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99년 생 모군은 "이사오자마자 호구 조사 당했다. 그곳은 일진 짱이 공부 잘하고 재력 있는 집안 애"라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또 어떨까? 학군지에서 수학학원을 3~4개 소화하고 있다는 초등학교 5학년인 지인의 딸은 장래희망을 묻는 내 질문에 "돈 많이 버는 백수요."라고 당당히 말해 좀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의 블랙유머 정도로 생각했던 그 말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아이 입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사춘기 특유의 반항적인 답변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 아이를 둘러싼 분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지방 출신인 내 머릿속에 서울의 학군지는 점점 괴상한 나라로 그려졌다. 자본이 완전히 삼켜버린 마을 같은?


피 터지는 경쟁과 무시무시한 박탈감, 자본에 의해 마비되는 도덕, 정의, 양심 같은 것.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할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는 것은 과연 괜찮은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알면 알 수록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위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SKY 같은 명문대 입학? 그것도 약하지. 요즘 SKY 나온다고 다 원하는 곳에 취직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확실한 고소득이 보장되는 가장 빠른 길인 의대 입학을 향해 달리는 거다. 이름하여 '의대 블랙홀'. 통과하면 마땅히 우월한 지위를 누리려 하고 통과 못하면 열패감에 영향 하에 여생을 보내고. 돈의 뒷받침이 필요한 지위다 보니 그저 돈돈돈으로 귀결된다.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 독재 국가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그러고 보면 대치동에 정신과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이들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된 생존자들이 아이를 낳고 싶을 리가 있을까?


내 미간이 자못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한 엄마가 묻는다.


"언니도 이사 생각 있어요?"


하고 있던 생각들을 쏟아냈다가는 다음 티타임 때는 안 끼워줄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저 인근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방과 후 시간 놀이터 가봤자 친구들이 없고 본인들이 채워주긴 벅차니 동네 학원 몇 군데 다니게 한다는 계획을 세울 따름이다. 위험한 생각에 휩싸인 사람들이 아니다.


"난 경쟁 트랙에 보낼 생각이 없어서 대안학교도 생각하고 있어."


그저 희미하게 깔려 있던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것도 파급이 크다.


"왜요??"


좀 더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두서없이 사교육은 시킬 생각이 없고 일반 공교육 시스템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고망이는 사회성에 어려움도 있다 보니 어쩌고 저쩌고 했더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며 신중하게 결정하라고들 했다. 일반적인 루트를 이탈하는 것이 위험해보였던 것이다. 하긴 당연히 급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학교의 위치나 비용 등 현실적인 고려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고망이가 친구들이랑 다른 길 가는 걸 후회한다면?


"우리 올망졸망이들 뭐 시킬 생각 있어?"


나는 슬쩍 질문 방향을 틀었다. 이 부분은 가볍게 할 수 있는 대화 주제니 말이다. 지금도 치료 수업을 생각하면 사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올해는 피아노 교습을 받게 해줄까 하고 있다. 악기 다루는 인생은 내가 일단 찬성이라서다. 그리고 7세 때는 태권도? 사교육을 시킬 생각이 없는 게 아니군.

내후년을 생각하는 이야기는 좀 더 고심하여 정리해보겠다. 이 글을 지나가다 읽는 사람들도 티타임 멤버들도 납득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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