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부침개 Jul 23. 2024

건강할땐 건강이 전부인걸 모르지


그래. 맞아.

아빠는 참 건강하셨다. 


늘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정갈하게 챙겨 운동을 다니셨다. 

테니스를 10년 넘게 치셔서 다부진 몸을 가지고 계셨으며, 수영도 열심히 하셨다. 

그리고 골프도 오랫동안 치셨다. 골프는 돈이 많은 사람들만 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가 골프를 치신 걸 보면, 그다지 예전만큼 골프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운동은 아닌가 보다. 


조금만 아프면 재깍재깍 병원에도 잘 가셨다. 본인에게 처방이 나온 약도 참 꼬박꼬박 잘 드셨다. 엄마는 아빠의 건강을 위해 매일 검은콩을 갈고, 마늘을 꿀에 재우고, 들깨가루와 홍삼 등 이것저것 참 잘 챙겨드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모르는 한문은 아빠에게 물어보면 척척 말해주실 정도로, 걸어 다니는 옥편같은 우리 아빠가 치매라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또 매사에 리더가 되어 사회생활 역시 100점 만점에 100점으로 하신 아빠가 치매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 적이 있었나..하며 다양한 정보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이 전부인 걸 잘 모른다. 

그래서 몸을 혹사 시키며 힘들게 하루를 사는 사람도 참 많다. 


아빠도 그러셨던 걸까? 

본인의 건강을 맹신한 채,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40~50대를 살아내셨던 걸까? 


그런 치열한 삶의 결과가 치매라니. 


아직은 치매 초기라 눈에 띄는 큰 이상 증상은 없지만, 

매일 같이 생활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가끔 부담되는 존재인 것 같다. 


뭔가 계속 챙겨줘야 하고,

뭔가 계속 보살펴줘야 하고, 

본인이 없으면 아빠가 혼자 뭔가를 못하실 것만 같아서 불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구나.

세월을 거스를 수 없구나. 

나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 참 빛나게 살아가리라 하고 다짐해 본다.


아직 가족 중에 아빠의 치매 진단은 나와 엄마 밖에 알지 못한다.

내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동생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빠의 치매 증상이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엄마와 내가 아빠의 치매 사실을 안고 가는 것으로 그렇게 우리 둘은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엄마도..아빠의 치매 사실을 안 후에 바로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마 그 짐을 딸인 나에게 나눠 주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하지만 이제 혼자 감당이 안 되시기에, "그 짐..너도 좀 짊어져 줄래? 미안해 딸아" 하는 마음의 소리를 내며 아빠의 치매 사실을 나에게 알리신 거겠지..


잘하셨어요 엄마.

그런 짐은 얼마든지 나눠서 우리 짊어지고 가요.


제가 아빠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이제 제대로 갚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우리 가족에게 아빠의 치매는 어떻게 다가올까? 




작가의 이전글 대학교수였던 아빠의 치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