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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u Jan 01. 2018

나는 왜 블로깅을 하려 했을까?

혼자 해보는 부수적인 고뇌의 한 줄기

#1


내가 처음 블로깅을 해볼까 생각했던 건 영화와 공연이 좋아서였다.


영화와 공연을 보는 경험 자체의 설레임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와 공연의 내용을 사회적 문맥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을 좋아하고,

감독/기획자/연출자가 의도한 바가 영화와 공연이라는 시각적 매체에 어떻게 녹아들어 투영되는지

내 나름대로는 요목조목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 정도면 적어도 작품을 깊이 보고 생각해 보려는 영화와 공연에 대한 "주목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줄 알았다.


그래서 블로깅을 시작하면 적어도 한 달에 한 개의 글은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그 정도의 열정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쉽지 않다.


문득 드는 물음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와 공연이 아닌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을 블로그에 적어 내려가려고 했던 건 왜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더이상 뒤엉키지 않도록 하나씩 풀어 생각해보려 한다.


#2


먼저, 나는 왜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었을까.


(여기서 내가 정의하는 좋아하는 것이란

내가 본질적으로 흥미가 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자발적으로 정보를 찾거나 실행에 옮기려 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고 세상이 밝아보이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학창 시절의 에너지를 가지고 희망찬 내일을 살아가는 젊은이로 살아갈 것만 같았던 내가,

어느 샌가 돌아보니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난 내 자신의 일상이 간단히 "직장인"에 그치게 되기 싫었다.

매우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가 보다.)


나는 "자아의 실현"을 매우 중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자아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 되는 그 무엇이 아닌,

그저 그 많은 직장인들 중 한 명의 직장인으로 굳어져 버리면

나의 존재가, 나의 색깔이 그저 그런 평범함에 묻혀버릴 것이 두려웠다.


개개인은 제 각각의 보석과 같은 빛나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믿어왔고,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매일매일 힘을 내면서 살아가는 나에게

나 자신의 특별함이 없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찾아야 했다.

내가 좋아하고, 좋아해서 집중하다 보면 미칠 수 있는 그러한 무언가를.


한 때 직장과 일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열중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했으나,

지금의 구조에서 그러기는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물리적으로 걸어가고 있는 길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놓여 있는 길은

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건 나의 커리어적인 고민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두 길 사이의 연결 다리를 어떻게 놓을지 궁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앞으로 최대 10년간 내가 나아갈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24시간 중 직장에서 소비하는 8+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라면,

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좋아해서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그 무언가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고 연마해서

나만의 뚜렷한 형태와 색깔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실 평생에 걸쳐서도 달성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스스로의 자아를 갖춰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즉,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열중했을 때 나만이 갖추는 자아가 생긴다고 믿고,

나만이 갖추는 자아가 생기는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내 인생의 가치/의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왜 영화와 공연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먼저, 어렸을 때부터 시각적인 것에 주목하는 것을 좋아했다.


유치원 무렵:

집 화장실에 있는 타일의 패턴을 응시하다 손으로 따라 그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방 천장에 있는 벽지의 무늬들을 손가락으로 이어보면서 허공에 무의미한 형태를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미술 시간이 즐거웠다. 내 손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좋았다.

평가의 기준과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그리고 만들면 되었다.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술중학교 준비 학원에 들어가 미술을 정식으로 배워보기도 하였다.

실력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으나, 평타 정도는 하였고, 수채화 보다는 뎃생이 특히 좋았다.

그러나 미술에 특출난 재능이 보이지 않기도 했고, 시력이 나빠지기도 했고,

예술가의 길은 험난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동의하여 예술중학교 준비를 멈추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날이었다.

비디오방에 들려 최신 인기 영화들을 대여해 저녁 때 보았다.

주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았고, 연출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중학교/고등학교 때에는:

미술 시간이 계속 기다려지고 즐거웠다.

예술중학교 준비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보다 그리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전문적인 교육은 아니었지만 미술학원에 꾸준히 다니며 뎃생과 수채화 연습을 이어갔다.


비디오는 매주 토요일 꾸준히 보았고, 이제는 아주 가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각 매체에 대한 해석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엔터테인먼트의 목적이 컸다.


그러나, 시각 매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떄이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행복했다.

다른 친구들이 장래를 걱정하며 법, 경제, 의학 등 다소 틀에 갇힌 전공을 선택할 때에,

나는 내가 관심있는 수업들만 골라 들을 수 있는 전공을 택했다.


내가 관심있는 수업들은 대부분 인문학 수업이었다. 역사, 사회, 인류학 등등.

그런데 재밌게도 역사, 사회, 인류학의 세부 수업 중 영화 관련 수업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아프리카 영화, 아일랜드 영화, 이스라엘 영화 등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 사회, 인류학의 줄기들을 영화로 풀어내는 수업들이었다.

 

"어? 나 영화도 좋아하는데? 그럼 일타이피로 이 수업들을 들어보자."


결과적으로는 너무 재밌었다.

영화가 담는 내용들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 생각되기에는 아까운 것들이었다.


한 나라의 역사, 사회상, 감독 개인의 성장 배경과 심리, 가치관 등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내용들이 담뿍 담겨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에세이를 통해 영화의 메세지를 하나의 꼭지로 쭉 풀어내보는 것도 연습했다.


그리고 영화에 지나지 않았던 나의 관심 범주가 공연 뿐 아니라

사진, 건축 등 시각 매체 전반으로 넓혀지게 된 것은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였다.


정말이지 말도 못하게 소중한 경험이다.

대학교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요소 중 최소 6할은 미술사 수업일 것이다.


이제는 영화 뿐 아니라

유화, 판화와 같은 고전적 미술 작품들,

근대에 이르러서는 공연예술, 건축예술, 사진예술 등

거의 모든 대중적 시각 매체에 대해 공부했고 그 속의 메세지를 읽고 분석하는 연습을 했다.


그 때에는 학교라는 구조 안에서 마음껏 마음 놓고 집중해서 미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학식이 절대적으로 엄청 깊었던 것은 아니다.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시각 매체에는 이러이러한게 있고 이러한 흐름으로 발전해 왔다 정도의 감은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바램?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사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이상한 개인적인 강박 때문에

원래 관심있던 분야와 동떨어져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 매몰되어버려서

3년 정도는 내가 좋아했던 영화, 공연 등 미술/예술을 좀 잊고 살았다.


그러나 재작년 부터인가...

직장에서의 시간이 12시간 밑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여유가 생겼는지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하고, 뮤지컬을 통해 공연을 다시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직장 외 자발적으로 보러가고, 정보를 찾고, 분석도 해보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활동을 좀 더 스스로에게 푸쉬하면

내 스스로를 타인에게 소개할 떄, 또는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나를 인식하는 특징 중 하나로 영화와 공연에 대한 열정을 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생 전반의 흐름을 혼자 되돌아 보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시각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영화와 공연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처음 만난 사람이 내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영화와 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둘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아직 쉽진 않지만 서툴게 나마 얘기할 수 있고,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은 영화와 공연을 즐겨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봤을 때 영화와 공연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4


그렇다면 왜 영화와 공연에 대한 블로깅 업데이트는 실천이 어려운 것일까?


- 내가 그냥 게을러서

- 영화와 공연에 대한 열정이 블로깅을 꾸준히 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 블로깅 활동의 목적 자체를 영화와 공연에만 너무 좁게 설정해두어서


안타깝지만 아마 이 세 가지 모두인 것 같다...

아무래도 각성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본 포스트의 말을 줄이고,

차근차근 행동으로 옮길 건 옮겨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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