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개인의 취향
오래된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집 근처 맥주집에서 음식을 시켰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방금 전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한참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친구는 내 말을 잠시 듣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해도 어떤 느낌인지 몰라. 나는 그냥 영화를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하는 생각만 해.”
충격이었다.
오래 알아온 친구였지만, 오래된 시간이 영화 취향까지 같게 만들진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가 끝나도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영화나 상징적인 장면들이 나와 그것들이 사건을 이끌어가는 영화들. (소위 말하는 떡밥 회수 영화들)
하지만 친구는 가벼운 영화를 좋아했다. 재밌고 웃기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런 영화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개운하게 영화관을 나설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그러니까 그 친구는 내가 하는 영화 얘기가 공감되지 않고 지루했던 거지.
영화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는다.
그 친구를 만날 때 영화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길 하면 되지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나는 글을 쓴다.
나는 무지무지한 겁쟁이기 때문에 내가 재밌게 본 영화를 면전에 대고 ‘난 별론데?’라고 하는 말을 받아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은 다 개인의 취향이 있어 내가 어떻다 판단 내릴 권리도 없으니까.
취향이 다른 사람과 영화를 볼 땐 말을 줄이자.
투머치 토커는 어딜 가나 지루함을 불러일으키니.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다. 단지 내 취향에 안 맞는 것뿐.
아, 물론 못 만든 영화는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