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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무기력증의 지독한 시간을 보내며

[나의 생각]

by W하루

올해 봄,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제법 높은 단계의, 꽤나 심각한 상태였다.


사실 나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우울증이 심했다는 것을.

다만 병원에 가서 '우울증'이라고 진단받는 순간 스스로 우울증 환자라는 것에 빠져버릴까봐, 그게 싫어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우울증은 단순히 멘탈이 약해서가 절대 아니라,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질병이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제발 올바로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우울증 환자에게 최악의 말이, '멘탈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손절해야 함)

하다못해 소중한 사람이 해주는 '힘내, 일어나자'라는 응원의 말도 때로는 폭력적으로 들린다.


나도 힘을 내고 싶고, 일어나고 싶은데 정말 의지로 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뚝거리는 사람에게 제대로 걸으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선아(신민아)가 우울증으로 시간 감각도 잃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영상을 보며 내 모습같아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영상의 댓글을 보며 진짜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만이 쓴 글들에 위로가 되었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있구나 싶었다. (단순히 우울감과는 완전 다르다! 분명 말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우울한 '감정'과는 별개이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온갖 약 부작용에 시달리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나갔다. 어쩌면 우울증은 양반(?)이었다. 함께 찾아온 무기력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최악의 시간이었다. (물론 현재도 극복 중)


나는 자타공인 게으른 캐릭터가 절대 아니다. 아니, 부지런한 편에 더 가깝다.

그런 내가 심한 날은 20시간을 누워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싶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이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정말 고장 난 사람 마냥, 혹은 땅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누워있다가 잠들었다가 그렇게를 반복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업무나, 약속이 있다면 그 시간만큼은 일어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무조건 누워있었다. 누워있으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나에게는 죽음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답은 정해져 있었다. 자살 아니면 살자. 전자에 대한 용기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힘내자 으쌰으쌰 긍정의 기운!' 따위로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그냥 무기력증에 힘을 쓰지도 못한 채 빠져있었다. 그러나 나는 죽을 것이 아니라면,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비록 직장인은 아니지만 프리랜서로서 해야 할 일도 있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소소하지만 내가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완벽하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 기록해 본다.


먼저, 무기력증을 받아들였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누워있는 나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고 한심하고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는 아픈 사람이니까 누워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누워있는 것이 디폴트인 인간이다. 환자이니까.

그러기에 일어나서 밥 한 끼를 먹어도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하루 중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을 시, 그런 나를 비난했다. 하루에 잘한 9개를 칭찬해 주기보다 못한 1개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스타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으며, 몸을 일으켜서 씻는 내가,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는 내가, 밖에 나가서 커피를 사 마시는 내가 너무 기특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인데, 환자인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나를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비난을 멈추었다.

그리고 하루에 3가지씩 해야 할 일을 썼다. 예전의 나라면 그 3개가 '운동하기, 영어 공부하기, 독서하기' 등의 자기개발에 가까운 활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퇴근하고 나에게 맛있는 것 사주기, 누워서 종일 유튜브 봐도 스스로 비난하지 않기, 천천히 산책하기'. 아주 쉽고, 사소하고, 나 자신을 칭찬해 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덕분에,, 최근에 살이 아주 많이 쪄버렸지만, 확실한 건 무기력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비가 온다.

비가 오니까 운동 따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김치부침개에 콜라를 마시며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고자 한다.

(살찌는 건 잠깐... 눈감자.)


일단 내 마음이 건강해져야, 내가 살아나야,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너무 잘했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났고, 건강한 샌드위치도 사 먹었고, 장도 봤고, 빨래도 2번이나 하고, 업무도 하고, 무려 이렇게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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