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를 닮은 사람을 만났다

by 원화 혜정

스무 살이 넘었을 무렵,

나는 내 껍질을 조금씩 벗기고 있었다.

아직 안쪽은 어두웠지만,

겉은 사람 구실을 조금씩 해내던 시절.


그날도 그냥 그랬다.

친구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같이 가자고 했고,

난 대수롭지 않게

커피숍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검은 목티에 카키색 자켓을 입은 남자.

처음 본 얼굴인데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아니, 어디선가

계속 날 바라보던 그 눈빛이었다.


학창 시절,

가위에 눌릴 때마다

언제나 내 머리맡에 앉아

말없이 날 보던

그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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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 사람이랑 엮이겠다.”

그 생각이 머리보다 먼저 들었다.


그 사람이 좋았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이상한 편안함이 있었다.

딱히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나 같아서...


나도 이상한 사람,

그도 특이한 사람,

근데 같이 있으면

우린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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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구들은 물었다.

“쟤랑 왜 만나?”

가진 것도 없고,

직업도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그 사람을

왜 굳이…


근데 나도 잘 모르겠더라.

그냥,

그 사람을 보면

내가 보였어.

뭔가 끌린다기보다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한 느낌?

피난처가 아니라,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느낌.


그때의 감정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됐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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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를 위하려는 세심함도 없었던 것 같다.

기념일도, 생일도 잘 챙기지 않았고,

현실적인 걱정은 쌓여갔지만

그런 건 대화의 주제가 아니었다.


우리 대화는 늘

현실을 벗어난 차원의 이야기들이었다.

전날 꾼 꿈 이야기,

그날 갑자기 느껴진 감각,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우리는 같은 꿈을 여러 번 꾸기도 했고,

같은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내가 아닌,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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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계기도 없이

그냥…

같이 가던 길을 계속 걷자는 마음으로.

1999년 4월 18일.


그날 이후,

내 삶의 방향이

‘나를 위한’ 쪽에서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함께한다고

내가 갑자기 행복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내 안에 있던 어둠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의

또 다른 나에 대한 연민…

처음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사랑했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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