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인생은 공중전입니다' 연재를 중지하며...
중학교 시절 나는 쌍꺼풀이 한쪽만 있어서 유리테이프를 붙이곤 했다.
친구들이 뭔지 모를 화장품으로 화장을 할 때 나는 싸인펜으로 아이라인을 그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존재 자체가 빛나던 시절이었는데,
그 길을 걷던 나는
나 자신의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길을 걷다가 짙은 화장과 성형수술을 한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그 꽃,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지나고 있는 이 길의 배경을 잘 보지 못한다.
내가 아닌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하기 때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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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다음 인생은 공중전입니다'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말장난, 글장난을 좋아할 뿐,
많은 독서를 통해 조리 있게 글을 쓰거나 뛰어난 전달력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글을 쓰며 살았다.
나만 볼 수 있는 일기, 공유하고 싶은 일상, 나만의 해석으로 풀어놓은 사물의 이야기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시선, 여과 없는 솔직함.. 그런 것들이 나의 글의 주제였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가 된 후부터 나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니 화장을 넘어 분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변장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왜일까?
글을 써서 발행하고 연재하면 누군가가 내 글을 읽을 수도 있으니까,
글을 못 쓴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더 잘난 사람처럼 보이려 했던 것 같다.
평소 좋아했던 디자인작업과 글장난을 총동원하여 표지도 제목도 꾸미고, 글을 정리하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회가 거듭될수록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도저히 진짜 내 모습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숨 좀 쉬는 여자'는 내 경험담이고 전문 분야라 생각했기에,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정리하듯 쓸 수 있었다.
천사번호 1111 소설은 내 체험과 관심 분야라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었다. 잘 쓰고 못쓰고의 무게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인생은 공중전입니다'는 자전적 에세이다.
나는 유명인사도, 대단한 사람도 아니지만
내 삶을 친구나 이웃에게 이야기하듯이 쓰려했던 글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별로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지, 어떻게 써야 내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글이 점점 힘들어졌다.
누가 내 하루하루를 알고 싶어 할까 싶으면서도...
힘 빼는 게 쉬운 줄 알았던 내가 글을 쓰면서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의식하고 치장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네 글 그렇게 열심히 안 보니까 그냥 편하게 쓰라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눈에는 보이니까.
그래도 몇몇 분들이 구독을 눌러주시고 내 글을 봐주셨는데, 나는 그분들에게 분장을 넘어 변장을 시도하는 듯한 나의 글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었다. (글의 내용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민낯을 숨긴 게 마음 편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음 인생은 공중전입니다'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다고 결론지었다.
얼마 뒤, 아니 내일이라도 동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내 모습 그대로 글을 쓸 수 있을 때 다시 돌아오려 합니다.
잘 쓰는 글보다 편히 쓸 수 있을 때...
다음 인생은 공중전입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