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슬픔
“얘… 나도 데려가야지.”
놀이터 한편, 해 질 녘 모래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검은 봉지 하나.
누군가를 향해 말없이 외치는 그 목소리가 마음에 박혔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봉다리 라고.
공장에서 태어난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분명 큰 역할을 할 거야!’
누구는 음식점으로, 누구는 옷가게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생선가게로 팔려갔다.
트럭에 실려 출발하던 날,
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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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갈치를 담고 떠났고,
엄마는 조개껍질에 베인 채 작별 인사를 했다.
형제들도 하나둘 쓰임을 다하고 떠났고,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내 차례가 왔다.
미꾸라지들이 내 안으로 쏟아졌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지만,
움직임을 멈춘 그들을 보며
슬픔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래, 이번 일은 고됐지만…
나는 앞으로 더 소중한 걸 지키는 존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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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군가 내게 물을 붓고
비누칠을 하고
나를 구기고 비틀었다.
숨이 막혔다.
이후 나는 베란다 건조대에 거꾸로 매달려 밤을 지새웠다.
무거운 몸과 축 처진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다음 날,
찢긴 친구 하나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아직 쓸 수 있는데…”
“나도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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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나를 들고 놀이터로 갔다.
흙을 담고, 바람을 담고,
이리저리 흔들다
모래더미에 툭—
나는 반쯤 묻힌 채
그 자리에 버려졌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나는 찢기고, 말라가고, 구겨지고, 잊혔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나, 여기서 500년째야.”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사라질 수 없는 존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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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 몸이 다 닳아 사라지고,
다음 세상엔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데서도 사라지지 못한 채
돌 틈, 나뭇가지, 물웅덩이 어딘가에
그냥 ‘존재’만 하며 남겨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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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여기에 있다.
모래 속에, 나뭇가지에,
하천 어딘가에.
혹시…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요?
경남학부모 ‘그린멘토’의 일원으로
저는 일주일에 한 번,
네 명의 멤버들과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멋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많이 알지 못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살아갑니다.
그런 저의 시선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려 합니다.
《나는 비닐봉지입니다》는
지난겨울 어느 멋진 카페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중,
나뭇가지에 오도 가도 못한 채 걸려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았습니다.
몇 달 뒤 다시 찾은 그곳엔
그 봉지가 여전히 있었습니다.
살점이 찢기고 바람에 너덜거리며…
한 번의 사용으로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못하는
비닐봉지들의 존재를 상상하며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아이들이 이 글을 통해
물건의 쓰임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고,
어른들이 이 글을 통해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랍니다.
당신이 남긴 봉지 하나,
누군가의 긴 고통이 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