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가 생전에 써놓은 그의 묘비명은 위와 같이 간결하지만 그 속에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렇게 명인(名人)들의 묘비명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숨겨져 있는 마음속 뜻을 읽을 수 있다.
인도의 철학자이자 명상가인 오쇼 라즈니쉬(1931~1993)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
인생의 여정을 마치 여행과 같이 비유하여 잠시 지구라는 행성에 머물렀다가 다시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묘비명으로 우리나라의 ‘귀천(歸天)’이라는 유명한 시를 쓴 천상병 (1930~1993) 시인을 살펴보자.
그는 1967년 동백림 간첩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 기간에 혹독한 고문으로 인하여 성불구자가 되었고 치아도 빠지는 등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암흑의 시대를 막걸리 한잔으로 이겨내며 살아낸 그의 삶, 그의 시 ‘귀천’을 차분히 살펴보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의 시(詩) 마지막 3줄이 고 천상병 시인의 묘비명으로 남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어떠한가? 고인의 유명한 시 ‘귀천’의 구절을 넣은 이 내용이 오쇼 라즈니쉬의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와 너무 연결되어 생각되지 않는가?
또한 재치가 넘치며 재미있는 묘비명도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출신 평론가이며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물론 다소간에 오역(誤譯)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해학적(諧謔的)인 표현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위트가 넘치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비장함이 감도는 묘비명은 바로 우리나라의 성웅(聖雄) 이순신(1545~1598) 장군의 묘비명이 아닐 수 없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라.”
이 문구는 생전의 이순신 장군이 했던 말을 사후 후손들이 묘비에 썼을 거로 추정되지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비장함이 감도는 묘비명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구국의 영웅이며 해전의 베스트 엘리트 사령관 이. 순. 신!
그런가 하면 감수성이 가득 묻어나는 다음 묘비명의 인물을 살펴보자. 그 사람은 바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이 참전하도록 만든 우리로서는 심히 유감이 있는 인물로서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1592년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그의 무덤에는 의외로 감수성이 가득한 묘비명이 있다.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인가 보다
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구나!”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제1의 통치자가 되어 화려한 오사카성을 구축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찌 서럽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토록이나 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다고 한 전쟁광 도요토미 히데요시!
2025년 8월 25일, 바로 지난달 팔월에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는 그의 동상의 목이 누군가에 의해 잘린 채 발견되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발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훌륭하고 유명한 묘비명이 많이 있으나 각설하고 마지막으로 MBC 보도국장과 대전 MBC사장을 역임한 김상기 시인이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아내의 무덤’이라는 시(詩)[2011년 발간한 시집]에 이어 아내의 무덤에 시인이 직접 지은 묘비명으로 쓰여있는 ‘연가’라는 묘비명 시를 옮겨 적어본다.
인간의 사랑, 부부(夫婦)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시와 묘비명 시를 읽어보고 우리의 인간관계 정립에도 다시 한번 마음을 쏟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내의 무덤’
김 상기
겨울 눈밭에 내가 서 있다
손발보다 가슴이 더 시리다
새봄이 또 와도
기다리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여름 소나기가 하늘 무너진 듯 울고 간다
내 눈물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가을 마른 잔디 위로 빈 바람이 흩어진다
내 영혼도 부서진다
허깨비 같은 내가
하릴없이 무덤가를 서성인다
오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한 줌 흙으로 다시 만날 날이
‘연가’
목숨이 백 년은 푸르를 줄 알았다
사랑은 천 년도 짧을 것만 같았다
차운 비 한 서슬에 놀라 깨니 적막한 꿈
꽃향기 새소리도 無明으로 쓸려간다
깊은 강 건너 잊혀진 내 무덤가
그리운 그대 음성 바람결에 뒤채 인다.
Wednesday, September 9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