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라, 청춘!

인간은 모두가 존엄한 존재다.

by James Kim



“우리가 숨 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우리의 메마른 일상들이 기록의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 주는 순간,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된다.

공포를 몰고 오는 페스트 안에서도, 봄은 온다.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으라.

청춘(靑春)!”


알베르 까뮈 [페스트]에서


알베르 까뮈는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그는 알제리 오랑(Orang)에서 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이후 결핵치료를 위해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 머물며 그의 작품 ‘페스트’를 썼다. 그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7년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서 장 폴 사르트르 등과 함께 유명 프랑스 작가로 선정되었다.

알베르 까뮈는 인간의 존엄한 존재에 대해 ‘우리가 숨 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라고 페스트에서 말하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연봉이 높은 직장을 다니며, 좋은 집에 멋진 승용차를 가진 사람을 흔히들 성공한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글을 많이 읽고 지식이 높아지고 좋은 글을 쓰면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많은 지인과 친구를 둔 사람을 세상을 살아나감에 있어 원만한 품격을 지닌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라 말한다.

알베르 까뮈는 성공한 인생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만이 존엄하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메마른 일상들이 기록의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 주는 순간,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된다.’ 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메마른 일상이란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고 겪는 온갖 고초와 어려움에 부대끼며, 그 과정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우리의 참모습이 아닌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뭔가를 이루려 애쓰는 청소년의 모습은 안타까운 헛된 발버둥이 아니라 활기찬 비상을 꿈꾸는 미래를 향한 힘찬 날갯짓이다.

좁은 셋방에서 가정을 꾸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한 푼 두 푼 미래를 위해 절약하며 돈을 모아가는 신혼부부의 지난한 맞벌이 생활은 고난한 삶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차분한 준비로 보인다.

골목길의 작은 과일가게 앞에서 먼지 날리지 않도록 먼저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주위를 깨끗이 쓸며 오가는 사람에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아저씨의 뒷모습은 건강해 보인다.


얼마 전 심야에 갯벌에서 발을 다쳐 걷기 힘든 고립된 70대 노인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젊은 해양 경찰관이 구조 과정에서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뭍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실종되어 안타까운 참변을 당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구명조끼를 받아 입은 남성은 1시간 만에 구조될 수 있었지만 이 젊은 해경은 6시간 뒤에야 1km 이상 떨어진 바다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무엇이 이 젊은 해경을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캄캄한 심야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생명줄인 구명조끼를 벗어 남성에게 건네주게 하였을까? 젊은 해경의 어머니가 아들이 숨진 바다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안타까운 소리가 귀에 남아 먹먹한 느낌이 그대로이다.

그는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만들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책임소재를 묻는 여러 가지 기사가 난무하고 있다. 2인 1조의 원칙이 지켜졌더라면 안타까운 참변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말이 가장 많다.

2인 1조 작업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내용으로 위험작업 시 최소 2명의 근무자가 1조를 이루어 작업해야 한다는 안전수칙 법령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선진국 대열의 당당한 나라가 되었다. 더 이상 안타까운 막을 수 있는 사고나 재해는 미리 예방하는 시스템을 확고히 해야 한다. 특히 인명사고는 반드시 피해야 할 가장 중대한 예방책을 마련하여 다소 비용이 들고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현실화시켜야만 한다.


알베르 까뮈가 발표한 ‘페스트’ 외에도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질병이 전 세계로 전염확산되는 현상인 팬데믹(Pandemic)을 여러 가지로 겪고 있다. 과거의 사례로는 장티푸스, 천연두, 콜레라, 인플루엔자 등이 있고 최근 우리 모두 가까이서 보고 고통을 겪은 바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 우리 모두는 고통을 감내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모두가 힘을 함께했다. 거리 두기를 함께 하였으며 무더운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땀을 흘렸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학습에 임하였으며 재택근무를 하며 코로나를 이겨내려 애썼다. 너나 할 것 없이 성실하게 코로나 예방수칙을 지키는 성실한 시민이었다.


페스트에서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인류는 페스트를 이겨냈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넘어서는 시기를 겪었다.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공포를 몰고 오는 페스트 안에서도 봄은 온다.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으라.

청춘(靑春)!”



Wednesday, September 24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