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누구인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by James Kim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없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

[두 도시 이야기] 첫 구절에서


오늘 아침 문득 잠에서 깨어 지난날을 돌아다본다. 아득한 시간이 흐른 듯하나 어찌 보니 순간이었다. 또한 순간인 듯하나 긴 여정이었다.


혹독히 추웠던 어느 먼 겨울 새벽, 어둠을 깨우고 먼동이 터오는 시간에 비포장 신작로를 흔들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소년이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겨울 보리밭의 싹들이 막 떠오른 겨울 해의 빛을 사선으로 받으며 반짝였다. 소년은 운명처럼 아침 빛에 반짝이는 보리싹 하나를 집중하며 훗날까지 이 장면을 잊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하며 눈에 새겨 넣었다.

그때 그 소년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고개 들어 거울을 보니 욕심 많아 보이는 노인이 무연히 나를 보고 있다. 나를 보고 있는 그 노인을 보는 나는 저절로 인상을 찡그린다. 그 노인도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보고 대놓고 언짢은 표정을 내비친다. 저 노인은 누군가? 어째서 내 집 내 테이블 앞의 거울에 오늘 아침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하는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질문의 책’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이제 수많은 날 들이 가고 소년의 숱 많은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빈 곳이 허전하고, 반짝거리던 소년의 앳된 얼굴 곳곳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번지고 있다. 맑고 밝았던 소년의 눈이 어두워져 굵은 안경을 쓰고 밝은 빛 아래서만 글을 읽고 쓴다. 이제는 두툼해진 손마디의 노인이 자판을 천천히 두드리며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시간이다. 나이 들어감에 대한 포기와 굴복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과의 순응이며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 모든 것이 간결하고 평화롭다. 꿈도 야망도 사랑도 청춘의 언어로 쓰인 한때의 흘러간 하늘의 구름 같은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으며, 그때의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활발히 활동했었다. 또한 가슴 아픈 날보다 가슴 뛰는 날이 많았으며 일에 찌든 날들 속에서도 아름다운 이들과 소풍 가는 좋은 날들도 함께 했었다.

매화가 피어 순한 매화향이 천천히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른 봄날 그들과 함께 남도로 떠나는 길이 있어 좋았고,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두 손 들어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 할 때도 좋았다. 매화보다 붉고 매화보다 요염한 복사꽃을 보러 가는 길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니 멀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 밤 생선회 한 접시 앞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지인들과의 담소는 청춘의 낭만과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낙엽을 한 곳으로 쓸고 가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날 괜히 감상에 젖어 무연히 흘리던 눈물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어느 겨울날 떠났던 남도의 낯선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집어 바다를 향해 어설프게 물수제비 띄우던 날들이 남아있다.

나의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돌이켜 보면 나와 함께 늘 동행해 주고 나를 이해하여 준 그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라서 외롭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라서 늘 웃을 수 있었다. 항상 부족하고 급하고 모난 나를 책망치 아니하고 미소로 지켜봐 준 그들이 고맙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함께 하였기에 늘 나의 삶이 풍요로웠다.

나와 과거를 함께 했고, 현재를 함께 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따뜻한 손을 내밀어줄 내 인생의 동반자들께 오늘 참된 의미를 담아 감사의 미소를 보낸다.

나는 남들보다 크게 앞선 시대를 살지는 못하였으나 그리 뒤처진 삶을 살지도 않았다. 대중이 말하는 성공의 척도인 부(富)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부족함이 없는 소박한 생활관에 대한 의식이 있으니 그 또한 만족한다.

앞으로 걸어가는 걸음에 동행이 존재하니 외롭지도 않다. 청춘처럼 큰 걸음은 아닐지라도 천천히 작은 걸음을 함께 걷고 싶다. 이제는 청춘의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초록의 검푸른 잎들이 가만히 물들이는 가을이 왔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편한 오솔길을 걸을 것이다. 걷다 만나는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몸을 덥히고 지난날을 오랫동안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없었다.”로 글을 시작하여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으로 글을 끝내려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이제까지 내가 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취하러 가는 휴식은 내가 이제까지 알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좋은 휴식이다.”



Monday, September 22nd.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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