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관조하는 시간
“나는 내 작품이 책으로 나온 뒤에는 읽지 않는다.
내 책이 다시 읽을 만큼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꽂이에 수많은 다른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미지의 책들이 있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겠는가?”
-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4년 약관 18세에 그녀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인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을 발표한다. 여기에서 프랑스어 ‘안녕 Bonjour’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만날 때 하는 인사다. 이 작품의 발표로 그녀는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단숨에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열일곱 살의 소녀 세실이 여름휴가를 휴양지에서 그의 아버지와 보내면서 겪는 일들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슬픔이여 안녕’ 첫 문장은 다음처럼 시작한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문학(文學)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다. 최선의 것이며 최악의 것이자 치명적인 것으로서, 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 literature을 사랑하고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에 상상력과 필력(筆力)을 합쳐 여러 장르를 통해 표현한다.
소설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소설작품을 발표하고 수필가는 에세이의 형식을 통해 수필집을 발간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문구와 음운을 통해 자신의 시를 쓴다. 이 모든 행위가 문학의 창작과 발표의 과정에 속해 있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기이한 영토”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녀의 대답집(Reponses)에서 상상력과 지성에 대해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존중할 수 있다. 지성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용어의 라틴어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지성은 영어로 intelligence인데 라틴어 어원은 intellego이다. ‘inter’는 ‘내부’ ‘사이’라는 뜻이며 ‘lego’는 ‘선택하다’ ‘읽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지성(知性) ‘intellego’는 ‘행간을 읽는다’ ‘사이에서 선택한다’라는 뜻이 된다.
즉, 우리가 지성(知性)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교류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여 그와 나 사이의 관계를 바로 읽고 그 사이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상호 존중하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지성을 가진 존재로서 품위 있는 지성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과 나의 사이를 고려하지 않고 나의 내면의 심리상태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드러내어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을 살펴보지 못하는 사람은 지성인이 아닐 수 있다. 걷다가 가끔씩은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급히 재촉해 가면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우리는 가끔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늘 옳다’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녀의 에세이 집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 존재를 이른바 ‘완벽하게’ 지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내 자리에 앉혀 나를 대신해서 살도록 하고 나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나를 대신해서 내 자리에 앉아서 내가 나의 존재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줄 이를 찾아 나서야겠다. 그를 내 자리에 앉히고 나는 책을 읽으며 깊이 사색하고 반성하며 관조(觀照)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 발짝 물러나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세는 중요하다. 자신은 자신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자신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은 자신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태산같이 무겁고 진중하게 행동한다. 천상천하 유일무이한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7년 교통사고를 통해 다친 몸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복용한 진통제로 인하여 약물중독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글 ‘독 Toxique’에서 약물중독에 관한 단상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내 안 저 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짐승을 엿보는 한 마리 짐승이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우리 몸도 질병이나 전염병에 쉽게 무너지지만 마음은 온갖 유혹에 더 여리고 자주 무너져 내린다.
유혹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업신여기는 야수와 같은 한 마리의 짐승이다. 짐승을 바라보며 경멸하는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또 다른 한 마리의 짐승이 될 수 있다.
온갖 유혹에 무너진 몸은 중독에 빠지게 된다.
좋은 습관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하나씩 길들여서 좋은 습관을 쌓아 나가야 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 청소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 등이 좋은 습관 쌓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스며들기가 쉽다. 단 한 번의 시도로도 쉽게 빠져들고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힘이 든다. 일종의 중독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약물중독이나 마약 중독은 물론이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 폰 게임등도 한 번 길들여지면 빠져나오기 힘든 심각한 중독상태에 이르게 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 할 것 없이 내부 저 깊은 곳에 한 마리 짐승이 잠자고 있다. 늘 우리를 엿보며 호시탐탐 깨어나서 세력을 키울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 잠자고 있는 짐승을 깨우는 이는 남들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다.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를 쓴 작가이자 여성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조안 리’는 나쁜 중독의 시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다스리는 좋은 습관 기르기의 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과업을 주기,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기, 그리고 그 과업을 완수하여 시험을 통과하기. 그 체험은 내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던가?
나는 무엇이건 해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 다른 과업을 찾아 나서는 데 있어서 언제나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는 든든한 원군으로서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한 체험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쁜 길로 가는 길은 버리고 좋은 길로 이끄는 방향으로 길들여야 한다. 스스로를 제어해서 좋은 습관으로 길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길들여진다는 것,
너는 나에 의해서,
나는 너에 의해서,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단다.
너는 내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되는 거고,
나는 네게 있어서 둘도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
- 생텍 쥐베리 ‘어린 왕자’에서
Tuesday, October 7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