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한계

나의 세계를 규정하는 ....

by James Kim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

- 비트겐슈타인



그동안 유래없던 일주일간의 긴 추석 연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샌드위치 프라이데이를 쉬게 해주는 회사나 학교까지 있어 이날까지 포함하면 장장 10여 일의 가을 휴가를 가지는 셈이 된다. 10일이면 한 달의 삼 분의 일이다. 한 달의 삼 분의 일을 한꺼번에 쉰다는 얘기는 근로자나 회사원 입장에서는 특별 유급 휴가를 받은 기분일 것이다. 역으로 각종 회사나 공장의 보스들 입장에서는 힘들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 세상의 함수관계에서는 한편이 올라가면 반대편이 내려가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은퇴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긴 연휴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다. 다만 연휴로 인하여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넘쳐나고 차량 통행이 원활치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정도의 불편함을 느낄 뿐이다.

연휴 기간 내내 거의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로 인해 집에서 책을 읽으며 소일한다.

오늘 테마의 주인공은 ‘비트겐슈타인’이다.

그의 Full Name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은 논리학, 수학 철학, 심리 철학, 언어 철학을 다룬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이다.

그는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분석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


이 난해한 문장의 참뜻은 무엇일까. 이 말은 내가 쓰는 언어가 '나'라는 인간의 사고와 인식의 범위를 정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만큼만 사고할 수 있으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생각은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만약 어떤 개념이나 현상이 특정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개념은 인간의 인식 범위 밖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인식의 한계를 정하는 도구라고 설명하며, 언어가 세상과의 관계를 규정한다고 봤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뭔가 말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답답함, 그것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나의 지식의 한계, 세상의 한계가 거기까지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나는 나의 세계이다.”라고 그는 표현했다.

또한 그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말할 수도 없다."라고 했는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말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이 외에도 그가 말한 언어와 철학에 대한 몇 가지를 살펴보고 심오하게 숙고해 보면 왜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인지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말할 수도 없다. “


"우리는 언어로 우리 세계를 그림처럼 표현한다. “

"진리는 그림처럼 언어에 반영된다."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분명히 말해질 수 있다."


"언어 게임은 삶의 형식이다. “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만큼 세상을 본다. “

"인간은 언어 속에 갇힌 존재다."


연휴가 끝나가는 오늘 저녁 시간에 지금까지 너무 난해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 같아 몇 안 되지만 나의 글을 읽어주는 분들께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가능한 독창적이고 상큼 발랄한 글을 써서 읽는 분들의 마음을 즐겁고 편하게 해줘야 하는데 철학의 주제를 들고 나온 것부터 나의 불찰이었다.


나는 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행동 중 하나를 뭔가를 쓰는 행위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의 언어의 한계가 유한(有限)함으로 나의 글과 나의 세계도 하찮은 리미테이션 Limitation을 보인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klin)은 ”죽어서 육신이 썩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든지, 글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 “고 일갈한 적이 있다.


가치 있는 글을 쓰지도 못하고 글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하지 못한 나는 두렵고 송구한 마음으로 소심하고 비굴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나의 빈약한 언어 속에 갇혀 있는 인간으로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함에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말로 나타낼 수 없음에 나의 세계를 한탄하며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그림처럼 표현하는 많은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진리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글 속에 녹아있어 읽는 이들을 평안케 한다.


나는 오늘도 내가 사용하는 나의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책을 읽는다.

‘독서의 발견’을 쓴 유영만 작가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그의 책에 써놓았다.

“책을 읽으면 생각하고 내 삶에 실천한 만큼만 독서의 깊이와 넓이로 축적되고 확산되어 나간다. 내가 읽은 책이 바로 나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올 때의 내가 다르듯, 책 읽기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내가 다르다. 읽기 전의 내가 읽은 후의 나를 만나 화해하는 과정이 바로 책 읽기가 아닐까.”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니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 앙드레 지드



Thursday, October 9t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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