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詩

보르헤스와 워즈워스의 노래

by James Kim





‘축복의 시’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899년 8월 24일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남미사람들은 그 긴 이름으로 하여 우리를 가끔 당혹시킨다. 또한 에스파냐어를 사용하여 영어에 익숙한 우리가 그 이름을 영어 발음으로 읽을 때 무식하단 소리를 듣게 한다. 예를 들어 루이스의 퍼스트네임 Jorge를 호르헤로 읽지 않고 조지로 읽을 때 같은 경우이다.


보르헤스는 책 읽기를 좋아하여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독서를 하며 지냈고 거의 평생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작가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지나칠 정도로 책을 가까이한 관계로 30대 후반부터 결국 시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해서 말년에는 완벽하게 시력을 잃고 말았다. 실명한 이유는 이 외에도 대대로 이 집안의 남자들에게는 시력이 약화되어 결국 상실되는 유전적 질환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실명하기 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다. 업무가 간단한 대신 월급도 많지는 않았다. 그의 책과 문학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보잘것없는 사서에 대한 직업 선정에 냉대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지하 서고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창작에 몰두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시력이 점차 약해진 보르헤스가 계단을 오르다 열어놓은 창문에 머리를 부딪친 후유증으로 한 달 가까이 병석에 누운 적이 있었다. 그는 병석에 누운 상태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종이에 옮겼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작된 ‘보르헤스적 단편소설’들은 1944년에 [픽션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됨으로써 그의 명성을 굳혀주었다.

보르헤스는 무려 8회나 안과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실명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55세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자리를 얻게 되면서 완전히 실명하게 된 것이다. 무려 80만 권의 책을 관리하게 되었지만, 정작 단 한 권의 책도 읽을 수는 없었던 그는 이 글 서두에 있는 ‘축복의 시’(1958)를 썼다.

그는 시력을 잃은 뒤에도 어머니나 비서, 친구들에게 대필을 부탁하기까지 하면서 집필활동을 계속했다.

나도 도서관의 사서를 꿈꾼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골라서 읽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도서관의 사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소원해 보지 않았겠는가?


지식계의 티라노 사우러스라고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도 그의 책 ‘장미의 이름’ 첫 장을 다음처럼 도서관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소중한 장서를 가장 많이 보유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누가 보아도 멋진 윌리엄 수사가 나오는 ‘장미의 이름’의 첫 장은 이렇게 도서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예찬으로 시작한다.


눈이 멀어버린 보르헤스는 앞날이 어두운 우리들에게 절망을 딛고 넘어서 진정으로 희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작가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다음처럼 미래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그토록 사랑했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잃어버렸으니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해. 난 미래를 만들어야 해. 내가 정말로 잃어버린 가시적인 세상을 이어받을 미래 말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가 불안한 이유는 내가 세상을 불편하게 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삶의 가치를 주관적인 완강함으로 나에게 맞춰온 것은 아닌지.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지고, 멀리 있던 모든 것은 다시 가까워진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도 우리의 삶의 변곡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쩔까 싶다. 보르헤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워즈워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분명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다른 세상을 살아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생각 자체만으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책 속으로 완전히 빠져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나의 삶이 아닌 수십 개 수백 개의 인생을 꿈꾸는 것이 책으로의 여행이며 그 시대를 살아오며 느꼈을 작가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일이 되는 일이다.

마음속의 무지개를 그리면서 그것을 따라 사는 일이 남 보기에 우스워 보일지라도 꿈을 찾아가는 여정은 수백 개의 인생을 꿈꾸는 삶이 된다.


“The rainbow

(내 가슴은 한없이 뛰네 My heart leaps up)”


-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 나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매일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있다. 그것은 어제 돌아가신 분들이 그렇게나 갖기를 원했던 내일을 우리는 오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송이 피어나는 꽃을 보고 감동하며 미소 짓고,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 흘리는 사람은 마음속에 소년이 살아있는 순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으면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는 워즈워스의 시처럼 내 마음속에도 여전히 소년이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도심의 숲에는 아직 나뭇잎이 마지막 잎새를 떨구지 않고 있다.

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도 아직 숲을 떠나지 않았다.

따뜻한 겉옷을 준비하고 만추의 나무와 새와 하늘을 보러 나가 봐야겠다.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


Sunday, November 23r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