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을 수 없던 길

12월은 또 오고

by James Kim






“12 월”


- 최 대희


한해를 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당신에게 주기로 한 사랑 너무 아꼈습니다

용서하세요

바빴다는 건 핑계일 뿐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게으름을

반성합니다

새로 도착할 새해는

당신을 위해 쓰겠습니다

마치 장독대 위

소복이 쌓인 눈처럼

맑고 정갈한 사랑을


어느새 11월의 묵은 달을 넘기고 2025년의 마지막 장 12월의 캘린더를 펼친다.

올해 2025년 1월은 혹독하고 차가운 추위와 함께 시끄러운 시국 가운데에서 다가와 다행히 따뜻한 12월을 맞이하고 있다.


한 해를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은 늘 힘든 일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교차하고 즐거움과 서운함이 동반된다. 어느 때는 비가 오지 않아 가물었고 어느 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마음까지 눅눅한 상태가 지속됐다. 꽃이 피어 아름다운 봄날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있었다. 땡볕의 한여름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꽂고 바람 한 점 없는 숨통을 막히게 하는 땀 흘리는 답답한 여름날도 있었다. 이제 서늘한 바람 불어와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의 추억을 넘어서서 빌딩사이로 몰아치는 찬바람에 침잠하여 웅크리는 겨울이 다가왔다.


나에게 올해 2025년은 여러 가지의 의미와 가슴속에 뭔가를 툭 하고 떨어뜨리는 묵직함이 남아있는 해이다.

40년이 넘도록 한 가지 마음으로 똑같은 일을 해 오다 그 일을 그만두고 은퇴자의 삶을 시작한 순간은 뭐라 표현하기가 애매하다. 서운한 것 같으면서 홀가분한 마음도 든다. 자유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주어진 잉여시간에 순간 당황스러움이 동반되기도 한다. 발은 허방을 딛는 듯 주춤거리고 한밤중 깨어 지나간 시간의 사건과 순간들에 후회와 반성의 깊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잠이 들면 다시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묻어나는 꿈속을 헤매기도 한다. 어찌 보면 열심히 살아온 세월인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잘못된 인생을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나의 삶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다. 지나간 시간의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사고와 거기에 걸맞은 행동을 하였다고 믿는다.


참으로 바쁘게 살아온 저녁이 없는 삶의 세월이었다. 어느 날 문득 강의실 창밖으로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이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상상을 하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갈 수 있는 식당은 한정되어 있었다. 24시간을 운영하는 성의 없는 식당에서 허기만을 때우기 위해 하는 식사는 가끔은 사람을 우울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제 바쁜 삶의 현장을 벗어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나가는 지금은 행복한지 아니면 허무한지 가끔은 나를 돌아본다.

이제는 편히 쉬워도 된다고 자신에게 말해본다. 이제는 게으름을 피어도 자책할 필요 없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습관과 그 습관이 고착화된 세월의 두께는 생각보다 깊은가 보다. 나는 오늘도 오늘의 해야 할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투두 리스트에 체크하지 못한 칸이 있는 날은 불안해진다.

이렇게 직업의 현장에서 벗어나 은퇴자의 삶을 살면서도 아직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에서 어설프게 흔들리는 길을 붙잡고 있다.

흔들리는 길 가운데 서서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어설프게 12월을 마주하면서 나의 작금의 마음을 담아 도종환 시인의 글을 빌려 내 마음을 대신해 본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 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2025년은 이렇게 나의 인생 여정에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라는 커다란 줄을 그어 놓았다.

이제 12월이 왔으니 이 한 달을 오롯이 나의 여정에 큰 획을 그은 올 한 해가 나의 청춘과 젊음을 잘 마무리하였다고 위로받는 시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세스 노터붐은 그의 책 ‘의식’에서 말한다.

“나는 내 시대를 끝까지 살아갈 뿐이다.

다른 방법은 없거든,

그렇고말고.”



Monday, December 1s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