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you are old
“노년(老年)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의 몸속에 진행되는 늙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한다.
늙음의 끝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고,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나로서는 죽음 그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은 것 같은데,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
현 기영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서
현 기영 작가는 1941년 제주 출신으로 ‘순이 삼촌’을 썼다.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역사상 의미가 상당한 작품으로 1978년에 발표했다. 그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서슬이 퍼런 4 공화국 관계자들로부터 금서 조치를 당하는 등의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계기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올바른 재인식이 시작되기 시작하였고 문화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2016년 그의 나이 75세에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라는 타이틀로 산문집을 발표하면서 1부 ‘인생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게 갈 것 있나’의 ‘노년’ 첫 서두를 그리 써 놓았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라고.....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거울 속에서 한 늙고 추레한 노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어딘가 낯익은 얼굴인 것 같은데 내가 아니었다. 분명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로 거울을 볼 때면 스스로 나 자신에게 당부를 한다. ‘놀라지 말자!’ ‘놀라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이렇게 말이다.
현 기영 작가도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라고 말하듯이 정말 나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들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세월의 순환이라고 말하나 정작 당사자에게는 뜻밖의 일처럼 느껴진다. 남들은 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병들고 늙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는 그 순환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당연한 현실을 뜻밖의 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태어나면서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이고, 생성되면서 소멸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노년을 슬퍼하거나 서러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년이 되어서 좋은 점도 많이 있다. 젊어서 열심히 노력하여 축적한 재산으로 젊은 청춘들보다 돈 걱정이 없는 노년이 많다. 젊어서 습득한 지식과 학문으로 젊은 청춘들보다 훨씬 더 많은 풍부한 상식과 해박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헷세’는 그의 저서 ‘어쩌면 괜찮은 나이’에서 노년을 다음처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년이란 젊은 시절과는 분명 다르지만 다른 차이와 개성이 있고 젊은이의 삶에 담긴 것과는 다른 가능성이 깃든 삶이다.”
“젊든 늙든 간에 자연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결국 삶을 속이게 된다.”
인생의 어느 시기도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유아기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자라나고, 청년기는 피 끓는 젊음으로 열심히 학업과 직무에 용맹전진하고, 중년이 되어서는 뜻을 세워 한 가정을 착실히 이끌어 나가면서 부를 축적하며 자녀를 보살핀다. 노년이 되면 힘든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며 살아온 과정을 반추하면서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후손과 후대에 전수하는 삶을 살면 된다.
어느 시기라도 그 시기에 맞는 삶의 목적과 가치에 몰두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시기에 맞는 삶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노년의 삶은 격동하며 휘몰아치는 삶이 아니다. 노년의 삶은 조용하고 사색하는 삶이다. 노년의 삶은 어리석고 쓸데없는 잉여의 삶이 아니다. 노년의 삶은 지혜와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느리게 흐르는 구름 같은 삶이다.
“그대 늙었을 때 (When You Are Old)”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그대 늙어 은발 되어 잠이 가득해
난로 옆에서 꾸벅일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라.
한 때 그대의 눈이 지녔던 부드러운 눈매와
깊은 그늘을 꿈꾸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우아한 기쁨의 순간을 사랑했으며,
거짓된 사랑으로나 참된 사랑으로나
그대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가.
그러나 한 남자가 그대 안에 있는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하였고
변해가는 그대 얼굴의 슬픔마저 사랑했노라.
그리하여 그대는 붉게 타오르는 난로 창살에
고개 숙이고 조금쯤은 슬프게 중얼거리리라,
어찌하여 사랑은 저만치 달아나서 산꼭대기에 올랐고,
그리하여 저 수많은 별 들 사이에 얼굴을 감추었느냐고.
Friday, September 5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