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이 지는 꽃

by James Kim





“나는 지금 지는 꽃이다.

지는 꽃이 욕심을 부린다면 추하다.

지는 꽃이 피는 꽃처럼 아름다워지길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다.

지는 꽃은 지는 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 또한 욕심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정호승 ‘시의 길 위에서’


겨울 추위 속에서도 붉은 꽃망울을 피우는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꽃으로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은 동백꽃이다. 동백이란 이름 자체가 겨울 동(冬)에 나무 이름 백(栢)이다.

남도 지방의 어느 겨울날 형을 따라 나무 땔감을 준비하러 산에 갔던 날이 있었다. 너도 나도 나뭇가지로 땔감을 하여 밥을 하고 구들을 덥히던 시절 산에는 땔감이 늘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몇 개의 고개를 넘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땔감 나무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설픈 등짐나무를 지고 비뚤비뚤 들판을 내려오는 길에 힘에 부쳐 잠시 등짐을 내리고 쉼을 하다 마주친 동백나무에는 빨간 동백꽃이 탐스렇게 달려 있었다. 그 붉디붉은 동백꽃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아 쌓이고 온 세상은 눈 속에서 조용히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진녹색의 잎사귀에 빨간 꽃잎, 그 속의 풍성한 노란 꽃술들은 그저 그대로 조용히 흰 눈에 덮여가고 있었다.

먼 옛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장면이 겨울이 되면 나는 아직도 가끔씩 생각이나 눈을 감고 회상의 시간을 가져보곤 한다.


동백꽃은 다른 꽃들처럼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서서히 지지 않는다. 동백꽃은 모가지 전체를 통으로 떨어뜨려 장렬하게 땅바닥으로 떨어져 구른다.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애잔함이 가득하여 슬퍼지게 될 것이다.

동백으로 유명한 곳은 송창식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고창의 선운사도 좋고 강진의 백련사 오르는 길도 좋다. 여수 오동도 또한 동백이 많고 거제 지심도는 섬 전체가 동백나무 군락지라 해도 된다.

동백은 벌과 나비가 활동을 하지 않는 겨울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라 동백꽃의 풍부한 꿀은 동박새의 차지가 된다.

동백 열매에서 채취하는 동백기름은 옛날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머리를 윤택하게 빛내 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료로 쓰였다.


봄이 오면 차례로 피는 꽃은 먼저 눈을 뚫고 피는 복수초가 있다. 2월과 3월에 피며,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그 주위가 동그랗게 녹아 구멍이 난다고 눈색이 꽃, 얼음새꽃이라도 부른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과 희망이다.


다음은 매화이다. 남쪽 지리산 건너 섬진강가의 광양 다압 매화마을의 매화는 3월 초에 피며, 봄바람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향기가 그윽한 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키운 나무가 매화나무이다. 선생이 세상을 하직할 때 유언이 ‘매화나무에 물 줘라’였다 한다.

산수유는 3월 중순에 피기 시작하며 노란색 꽃망울이 매력적이다. 지리산 밑에 있는 산동마을이 유명하고 경기도 이천 백사면에도 산수유 마을이 있다. 열매는 빨갛고 약재로 쓰이는 유용한 나무이다.

개나리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에 피며, 봄을 물들이는 노란 꽃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봄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고급스럽게 노란색이 화사하다.

벚꽃을 빼놓고 봄을 논하면 뭔가 빠진 듯 서운할 만큼 우리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면서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거의 흰색에 가깝지만 핑크색이 살짝 도는 봄의 대표적인 꽃이다. 주로 강둑에 많이 심어져 있어 우리 산하 어디서든 봄이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여 준다. 벚꽃이 질 때 바람에 분분히 날리는 벚꽃잎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목련은 피어날 때 샹들리에의 촛대를 연상할 만큼 고고하고 활짝 피면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허나 목련은 꽃잎이 시들어 땅에 떨어지면 모습이 처연하여 슬프다.

진달래는 봄 산을 붉게 물들이는 꽃으로 4월에 피어나며 화전을 붙여서 먹기도 하는 꽃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로 유명한 북녘땅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꼭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복사꽃은 진달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며 핑크색을 띠고 있어 아름답기가 황홀할 지경이다. 맛있고 달콤한 복숭아를 잉태한 복사꽃을 도화(桃花)라 부른다. 꽃이 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워 도화는 가끔 안 좋은 뉘앙스를 띄기도 하지만 시샘하는 사람들이 갖다 붙인 질투 섞인 설명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봄에 피는 꽃이 워낙 많아 이화(梨花)라 불리는 하얀 배꽃을 빼놓았고 연초록의 잎과 함께 수줍게 피어나는 하얀 사과 꽃도 언급을 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향기가 봄이 한참 무르익는 계절과 함께 피어나는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고 벌들은 가장 많은 꿀을 여기서 수확한다. 돗자리 펴 들고 아카시아 꽃그늘 아래에서 친한 사람들과 동동주를 마시면 신선이 된 듯 봄날을 즐길 수 있다.

밤 꽃이 피면 진한 밤 꽃의 향기와 함께 봄이 가고 여름이 왔음을 확실히 알게 되고 아카시아 꿀이 없어져 허전한 벌들이 2차로 힘을 내어 많은 밤꿀을 거두어들인다.


이렇듯 모든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서 자태를 뽐내고 보는 이를 즐겁게 해 주고 장렬히 시들어간다. 지는 꽃이 피어나는 꽃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시들어서 지는 꽃도 한때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러므로 지는 꽃은 피어나는 꽃에게 어른스럽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한다. 지는 꽃이 욕심을 부린다면 추하고 노욕스럽다. 지는 꽃이 피는 꽃처럼 아름다워지길 바란다면 순리를 거스리는 일이다. 지는 꽃은 지는 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고 의젓함이 있고 업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세우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을 때 세상의 순리를 따르는 어짐 이다.

쓸쓸해지고 외로워질까 봐서 물러설 때와 헤어질 때를 모르고 집착하면 더욱 천박한 이가 된다. 눈을 밖으로 돌려 새로운 방향을 바라보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시인 이재무는 ‘시와 함께 걸어온 길’에서 나이 들면서 외로움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이런 우려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걷는 일에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때로 독약과도 같아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잘 못 다스리면 사람은 얼마든지 추해지거나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날이 결실인 삶을 살아가련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제물로 바치지 않으리라.

살며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생성에는 소멸이 뒤따른다.

그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자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이다.

오늘 처해진 상황에 알맞은 사유와 행동을 하는 사리와 분별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Tuesday, January 6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