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아름다움

글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by James Kim




“우리는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통해

열정의 극한까지,

사랑의 극한까지,

아픔의 극한까지

걸어가 볼 권리가 있다.

그 모든 감정의 극한을 문학 속에서 올올이 경험한다면

우리는 실제 삶에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더 눈부신 열정을,

더 뜨거운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문학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정여울 산문 ‘문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두툼한 겉옷을 걸치고 테이블로 다가간다. 전기난로를 켜고 스탠드 라이트를 밝히고 어젯밤 읽다 남겨둔 책을 펼친다.

이번 주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5권은 모두가 국내 작가의 서적이다. 수필이 3권으로 황석영의 ‘밥도둑’,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에세이집이다. 소설은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과 김연수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이다.

대출한 서적 5권의 작가가 모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인기 작가로서 내용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는 재미가 큰 만큼 한 권을 한꺼번에 읽지 않고 책을 나누어서 골고루 대강 30~50여 페이지씩을 읽고 다음 작가의 작품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황석영 작가의 ‘밥도둑’은 작가가 주로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나 북에 체류할 당시의 김일성 주석과의 식사와 에피소드가 들어있고 감옥에서의 오랜 수용생활을 하며 겪었던 제한된 음식 조달에 관한 내용들이 이야기꾼으로서의 아련한 기억과 추억에 담겨 맛깔스럽게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지나간 날의 사랑을 기억하는 ‘기억의 고리, 그 시작과 끝’의 챕터에서 작가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서 다음처럼 논하고 있다.


‘지나간 날의 사랑을 기억해 내는 데 있어서 여자는 연장되지 않은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는 잊어버리고 현재의 사람에 관한 가까운 기억으로 대치시킨다. 그에 비하면 남자들의 흘러간 사랑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이 퍼즐을 맞추어놓듯이 여자와 가졌던 에로틱한 순간들을 모아서 간직하거나, 좋고 나쁜 일에 대해서도 전체의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어느 시간의 미세한 부분만을 곰살궂게 기억한다.’


그런가 하면 ‘자전거 여행’의 김훈 작가는 ‘늙기란 힘든 사업이다’라는 챕터에서 노인에 대한 언급을 이렇게 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거울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나의 생애의 지도와 궤적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나도 또한 진땀이 났다.


‘그들의 얼굴은 삶의 표정들로 가득 차 있다. 늙어서 표정을 잃어버리는 노인들이 있고, 늙어도 표정이 넘치는 노인들이 있다. 그래서 노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생애의 지도이며 궤적이다. 나의 늙음은 어느 쪽인가를 따져보는 일은 진땀 난다. 늙기란 이토록 힘든 사업이다.’


김훈 작가의 필력을 대번에 알 수 있는 감동적인 문장 한 꼭지를 추가로 옮겨본다.

‘어떤 새는 저녁 무렵에 혼자서 바다로 나아간다. 가슴에 석양을 받으며 새는 캄캄해지는 수평선 쪽으로 날아간다. 혼자서 날아가는 새는 저 혼자서 바다 전체를 감당하려는 듯하다. 한 마리의 새는 바다 전체와 대치하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특히 편애하는 여성 작가 정여울의 산문 ‘문학이 필요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심장을 되찾기 위하여’라는 챕터 속의 여성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사랑스러운 보물 같은 문장들을 감상해 보기 바란다. 나는 또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 사춘기 소년이 어여쁜 소녀를 만나 온 마음을 열어 열렬히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겠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준비가 되니 예전에는 무덤덤하게 지나치던 모든 것이 아침 햇살처럼 환하게 다가왔다. 문학, 음악, 그림, 무용은 우리에게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권리’를 선물하는, 서로 지휘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무언의 오케스트라다. 사랑할 준비가 되니 내가 그동안 사랑하지 않았던 모든 시간이 못 견디게 아까웠다.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준비가 되니 내 곁의 사람들 모두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가까워졌다. 이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공격할까 봐 아름다움은 죄다 피해 다니던 시절은 끝났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처럼 반드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 찾아다녀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할 권리를 회복하자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마저 즐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기갈 들린 사람처럼 출간 첫날에 책을 사서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다가 다 읽고 나면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마음.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빨리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조급증마저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일부다. 삶에 대한 설렘을 회복하는 것, 세상에 대한 놀라움을 되찾는 것, 이 모든 것을 느끼는 감수성의 심장을 되찾는 것. 그것이 문학을 통해 우리가 쟁취할 수 있는 생의 기쁨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행동이 ‘삶에 대한 설렘을 회복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한 놀라움을 되찾는 행위라는 표현’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적극적이며 아름다운 표현인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느끼는 감수성의 심장을 되찾는 일, 그것은 바로 문학이 우리를 이끄는 힘이자 원동력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문학 작품을 통해 삶의 활력과 기쁨을 얻으며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어서 서둘러 다음 챕터를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 노트에 온갖 정성을 들여 한 문장 한 문장 옮겨 적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행복하게 살아있음을 오롯이 느낀다.


Thursday, January 15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