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기다리며
“한 가지 매화 그림자가 창 앞으로 뻗었는데
바람 센 서쪽 행랑에 달빛 더욱 밝아라.
화롯불 꺼졌는지 부저로 헤쳐 보고는
아이를 불러다 차솥을 바꾸라네.
밤서리에 놀란 잎이 자주 흔들리고
돌개바람이 눈을 몰아 긴 마루로 들어오네.
님 그리워 밤새도록 꿈속에 뒤척이니
빙하(氷河)가 어디런가, 그 옛날 전쟁터일세.
창에 가득한 붉은 해는 봄날처럼 따뜻한데
시름에 잠긴 눈썹에 졸음까지 더하네.
병에 꽂힌 작은 매화는 필 듯 말 듯 하는데
수줍어 말도 못 하고 원앙새만 수놓는구나.
쌀쌀한 서리 바람이 북쪽 숲을 스치는데
처량한 까마귀가 달을 보며 우는구나.
등불 앞에 님 생각 눈물 되어 흐르니
실에도 떨어지고 바늘에도 떨어지네.”
김시습 ‘이생규장전’ 네 번째 폭에 쓰인 시에서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 서울 성균관 근처에서 태어났다. 시습이라는 이름은 이웃에 살던 훗날 이조참판을 지내게 되는 최치운(崔致雲)이 지어준 것인데, 『논어(論語)』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실제로 그는 태어난 지 여덟 달 만에 글을 익혔다 한다. 두 살에 불과하였을 때, 이미 외할아버지에게서 시를 배우기 시작했고, 세 살이 되자 직접 시구를 짓기에 이르렀다. 김시습은 다섯 살 때에 이색(李穡)의 후손 이계전(李季甸)에게서 『중용(中庸)』, 『대학(大學)』 등 성리학의 기본 경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은 당대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을 불의라 여기고 단종(端宗)에 대한 의리를 지켜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세상에 실망한 그는 평생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많은 일화를 남기고 그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 몸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지만, 시대의 아픔을 목도한 채 그 정신마저 자유롭지는 못했던 한 지식인의 삶을 김시습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일 도(道)를 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기 한 몸만을 깨끗이 한다는 핑계로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 부끄러운 행위이지만, 만일 도를 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기 한 몸만을 선하게 하는 것도 용납할 수 있다.”
숙부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유학의 도를 행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위란 없다는 사실을 김시습은 깨달았다. 이 난세에서 오로지 자기 한 몸만이라도 깨끗이 하며 방랑하는 것 또한 시대를 염려하는 지식인의 한 행동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자신의 몸은 자유롭게 하였으나, 정신만은 시대로부터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김시습의 일생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15세기 김시습이 쓴 한문 소설로 이생규장전의 '규'는 '엿보다는 뜻의 '규(窺)'이며, 장은 '담장 장(牆)'이라는 뜻으로 '이생이 담 너머를 엿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갈래는 고전소설, 한문소설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살아있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 간의 사랑을 다루는 전기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공민왕 때 개성에 살던 이생(李生)이 주인공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이생규장전을 가만히 읽다 보면 옛 시절 처녀와 총각의 사랑 이야기가 애틋하면서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어른들이 두렵고 세상의 이목에 신경을 쓰는 시구가 먼저 인상적이다.
이생 총각이 사모하는 최 씨 처녀가 먼저 시 두 구절을 읊는다.
복사나무 오얏나무 가지 사이에 꽃송이 탐스럽고
원앙 베개 위에는 달빛이 곱디고와라.
이생이 그 뒤를 이어서 읊조린다.
다음날 어쩌다가 봄소식이 새어 나가면
무정한 비바람에 가련해지리라.
그렇게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구는 막 피어난 봄꽃처럼 아름답고 눈부시되, 동시에 이생의 답가에는 스스로의 사랑에 덧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고백의 느낌이 깊게 담겨있다. 사랑은 한창일수록 더 쉽게 세상의 바람에 노출되고, 그 아름다움이 깊을수록 상처 또한 먼저 예감되는 법이어서, 이생의 읊조림에는 설렘보다 한 박자 빠른 두려움이 은은히 스며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다 보면 달빛 아래의 원앙 베개를 바라보면서도, 그 위로 언제든 쏟아질 비바람의 기척을 함께 느끼게 된다.
그 예감은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을 미리 걱정하게 만들며,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이미 그 아픔을 함께 껴안고 있음을 조용히 암시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남녀의 사랑에는 늘 많은 제약과 금기가 따라다녔다. 그것은 사랑이 본래 기존의 형식과 규범을 넘어서서 기성세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생규장전의 이생과 최 씨 처녀의 만남도 부모의 허락과 혼인 절차를 앞지른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미 금기를 건드린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마음은 순수하지만, 유교적 질서 속에서는 월권이며, 그래서 그 사랑은 달빛 아래에서만 숨 쉬는 비밀이 된다. 밝은 낮이 오면 숨을 수밖에 없는 사랑인 것이다.
서양으로 시선을 돌리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개인적 감정의 차원에서는 아름답지만, 가문의 원한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가문의 질서를 흔드는 위협으로 인식되고, 결국 연인들은 죄인처럼 숨어 다녀야 하며, 죽음으로 끝을 마주한다.
신화 속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리스 신화의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은 개인적 열망이 국가적 질서와 충돌한 사례다. 헬레네를 향한 사랑은 간통이라는 도덕적 죄악으로 낙인찍히고, 동시에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국을 불러온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기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세계를 흔드는 금기 위반이 된다.
이처럼 젊은 남녀의 사랑이 자주 죄악과 금기로 둘러싸이는 이유는, 그 사랑이 아직 사회의 규칙에 길들여지지 않은 살아있는 무작위 젊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관습과 제도는 사랑을 관리하려 들고, 사랑은 관습과 제도를 비켜 가려한다. 그래서 젊은 사랑은 언제나 순수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지니며, 아름다움과 죄의 언어로 함께 기록되어 왔다.
결국 젊은 남녀의 사랑은 죄악과 금기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며, 그 억압의 틈새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렬하게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금기는 사랑을 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랑의 진실과 깊이를 가장 또렷하게 증명하는 배경이 되어 왔다.
사랑의 아픔을 나타내는 시와 노래들, 그리고 많은 사랑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랑의 대화와 노래 속에서 세월은 흘러가고 사랑은 남는다.
그렇기에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Monday, February 2nd.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