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었어

돌이킬 수 없는 그 어린 날의 한 장면

by 이진호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얌전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고집을 부리거나 말썽을 피우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지원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식탁에서 물컵으로 장난을 치는 지원이의 행동은 우리 부부에게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식탁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던 날, 지원이는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컵에 있던 물을 다른 컵으로 옮기기도 하며 그 놀이에 빠져 있었다. 서툰 손이라 흘리는 물이 반이었다. 고사리손으로 물을 옮기던 지원이의 진지한 표정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렇다고 식탁 주위를 물바다로 만드는 그 놀이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조용히 타일렀다. 하지만 지원이는 무슨 중요한 임무라도 맡은 듯 몰두했고, 말리는 우리와 실랑이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놀이가 시들해졌는지 스스로 멈췄다.


그때는 왜 그렇게 집중을 했을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컵 모양대로 물이 채워지고 컵에서 컵으로 옮겨지는 모습—어른 눈엔 당연하고 단순한 일이, 아이에게는 놀랍고 재미있는 발견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둘째 지민이가 같은 나이가 되었고, 언니처럼 컵을 들고 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놀이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그건 장난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새로운 배움은 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안 된다는 말 대신, 식탁 밑에 수건을 넉넉히 깔아주었다. 실컷 해보라고, 마음껏 물을 옮기라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허락과 여유 속에서, 지민이는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같은 행동이었지만, 지민이에게는 더 넓은 자유가 주어졌다.


분명 우리는 지원이를 키우며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어 있었다. 같은 사람이지만, 지민이를 키운 부모는 지원이가 만났던 초보 부모보다 나았을 거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낮출 수 있게 되었고, 아이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동안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목소리를 높이면 안 된다는 것도 지원이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이다.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던 시기, 지원이가 가위를 꺼내 든 적이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지원아, 위험해!”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 순간, 지원이는 온몸을 움찔하며 놀라더니, 울지도 못한 채 가만히 멈춰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깊이 반성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경고를 주는 방식이 아이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걸 그렇게 배웠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비록 항상 지킬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함께 남긴다. 같은 나이, 같은 호기심을 품었던 지원이는, 그 시간을 더 서툰 부모와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지원이에게 그 시절은 단 한 번뿐인 어린 날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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