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환타의 기억
배가 자주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이상하게도 저녁만 되면 배가 살살 아팠다. 무엇을 잘못 먹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교에 가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배에 손을 얹고 따뜻하게 해 주면 조금씩 나아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거의 매일 그랬다.
여름방학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걸어서 이십 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만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 말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원인을 찾았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약을 받아 와 빠짐없이 챙겨 먹었고, 병원에도 꾸준히 다녔다. 병원을 혼자 다닌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를 뚫고 걷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배 아픈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정도 더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땀 흘리며 다녔던 시간만큼 허무했다. 병원을 더 다니는 것도 의미 없어 보였고, 방학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왜 치료가 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사의 진단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린 나로서는 하지 못했다.
몇 달 뒤, 어머니와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집에서 더 가까운 곳이었다. 한 번 실패를 겪은 뒤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진료 도중, 의사는 어머니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얘 공부 잘하죠?”
내 성적을 묻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대답은 늘 “보통”이었다. 하지만 의사에게만큼은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날 처음으로 “잘하는 편”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신경이 예민한 아이가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할 리 없다는 것이었다. 배가 아픈 건 어디가 나빠서가 아니라 신경성이라는 설명이었다. 거의 매일 배가 아팠던 게 거창한 병명이 아니라니 다행이면서 의외였다.
그날 받아 온 약에는 물약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색깔도 주황색이고, 맛도 꼭 김 빠진 환타 같았다.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약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약을 먹은 그날 저녁부터 배가 아프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랬다. 약을 다 먹고 나서도 증상은 거의 사라졌다. 약 때문인지, 의사의 설명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둘이 함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래 지나 돌아보니, 그날 배가 멈춘 이유는 약보다도 원인을 알게 된 것 같다. 왜 아픈지 알게 되자 몸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성격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린 시절에는 알기 어려웠다. 다행히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복통만 나은 게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예민한 성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배가 아프다는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큰아이, 지원이었다. 시험 같이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픈 배를 문지르던 어렸을 때의 내가 겹쳐 보였다. 하필 닮아도 그런 걸 닮았을까.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내게는 그때의 "김 빠진 환타"가 없었다.
지원이는 요즘도 가끔 배가 아프다고 한다. 신경 쓰이는 상황이 복통으로 이어지는 연결을 아직 못 끊어냈나 보다. 나는 무엇을 해주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