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일에 대해 알게 된 경험
대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수학 과외를 맡게 되었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소개받은 자리였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성적만큼은 놔둘 수가 없어서 과외를 받기로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일반적인 과외비의 절반만 받는 조건이었는데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그 사정에 마음이 갔던 모양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학생은 키가 크고 마른 체구였고, 인상은 유난히 착했다. 학생의 부모님은 나를 마치 학교 선생님을 대하는 거 같았다. 아들의 성적을 꼭 올려주길 바라는 마음과 과연 내가 그 기대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겹쳐진 심정이었으리라. 지나친 해석인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첫 수업 날,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학생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 성적이 4년제 대학을 꿈꾸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현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모님이 왜 이 부담스러운 선택을 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갔다.
공부만 빼면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다만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고, 스스로를 몰아붙여 본 적 없었을 뿐이었다. 너나 나나 물려받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래를 생각하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이 과외를 맡기기까지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함께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말. 그 말을 듣던 학생의 눈빛에 불이 켜지는 걸 분명히 보았다.
몇 번 수업을 했는데, 기말고사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학만 잡고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전체 성적이 저조한데 수학에 열중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 과목을 다루기로 방향을 바꿨다. 각 과목의 핵심을 정리하고 예상문제를 뽑아 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재미있는 건,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사립학교라서 선생님들이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수업 스타일, 문제 출제 방식, 심지어 별명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족집게 과외선생이 되었다.
기말고사 이후 변함없이 과외를 하러 갔던 날이었다. 현관에서 벨을 누르자 집 안에서 서둘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부모님 두 분이 현관까지 나와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셨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학생의 성적이 크게 오른 거였다. 전체 240명 중 170등이었는데 70등으로 무려 100등 상승이었다. 그 학교에서 70등이면 4년제 대학도 갈 수 있는 등수였다. 갑자기 성적이 오른 이유에 대해 담임 선생님에게 불려 가 설명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들었다.
학생 부모님은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인양 대하셨지만, 사실 나는 공부하는 방향만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보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대견했다. 오히려 나는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수학 성적이 기대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예상 문제에서 많은 문제가 출제되었음에도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부모님은 전체 성적을 보고 기뻐하셨지만, 나는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성적이 오르고 나서 달라진 풍경이 있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밖에서 아버님이 삼겹살을 굽기 시작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내 친구를 통해 알아내셨을 거다. 저녁을 먹지 않고 두 시간 수업을 하던 날들이 많았기에,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버님과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셨다. 한창 잘 먹을 나이였던 나는 포식을 했고, 그러면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밥은 드셔야죠.” 그 성의를 마다할 수 없어 정성스럽게 차려진 반찬에 밥까지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밥상은 음식이 아니라, 아들의 성적을 끌어올려 준 노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양하지 않고 감사히 먹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감사가 담긴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보람찼다. 학생은 내가 지도하는 대로 성실히 따라왔고, 성적은 더 올랐다. 2학년을 마칠 즈음에는 학교에서도 꽤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삼겹살과 밥상 덕분에 체중이 꽤 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년을 마칠 무렵, 학생의 아버지가 간곡한 부탁을 하셨다. 이제 고3이니 한 해만 더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거였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꺼내신 그 말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군대를 가야 했다.
돌아보면 그 1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지식을 전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된 경험. 시간이 훨씬 지나,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기이다.
지금도 문득, 삼겹살을 보면 그때 방밖에서 들리던 삼겹살 굽는 소리와 냄새가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