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빠

두 장면으로 증명된 이야기

by 이진호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들 아이들 보고 귀엽다고 말할 때, 사실 나는 약간의 연기가 필요하다. 나도 이뻐하는 척하는 연기 말이다.


그래서 큰 딸, 지원이가 뱃속에 있을 때 걱정이 앞섰다. 다른 아이들 같이 애정이 안 생기면 어떡하나. 내 아이는 다를까. 주변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자기 핏줄은 다르다고. 그 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그 말에 기대야 하는 내 마음이 조금 불안했다.


지나고 보니, 역시 어른들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유난스럽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아이들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이다. 예정대로 진통이 와 병원에 갔고, 자연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점점 지쳐 갔고, 결국 의사는 제왕절개를 이야기했다. 당황스럽게도 그 결정권은 나한테 있었다. 산모와 아이를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내도 아이를 생각해 빨리 수술하자 했지만, 장모님은 출산 이후 딸의 회복을 걱정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하셨다. 나도 그 걱정을 무시할 수 없어서 주저했다. 더 기다릴 수 없는 상황에서야 수술을 택했다. 그때 장모님이 혼잣말처럼 하신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는 자기 딸 걱정해서 그러지만, 나는 내 딸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를 내 눈앞에 보여 주었다. 쉴 새 없이 눈코입이 있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정상이라는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내게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꿈결 같았다.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아이의 모습만 보였다. 너무 감동적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역시 내 아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두 번째 기억은 어느 여름날이다. 친구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원이는 후식으로 받은 수박을 소중하게 들고 있었다. 아껴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그 수박을 떨어뜨렸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정말 짧은 순간. 나는 그 순간에 행동을 취해야 했다.


얼른 수박을 집어 들고, 입으로 빨아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쥐어 주었다. 지원이는 터질 듯하던 울음을 삼켰다. 마치 순간을 늘여 놓은 듯, 이 과정이 찰나에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아빠다.”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반사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야, 어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자기 자식은 다르긴 한가 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이제 대학을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났다. 예전처럼 보살필 수도 없고, 보살펴서도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 남은 역할이 있지만, 아이를 아이로 대하던 아빠의 역할은 다 지나갔다. 그 역할을 잘했는지, 부족했는지는 상관없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아이들의 부모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아, 저 아이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겠구나.' 내가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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