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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Nov 04. 2016

'행복한 직장생활'이 없는 이유

내 나름대로 진화심리학에서 찾은 답

‘항상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한다’ 던 회장님의 어록은 성공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과연 직장에서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직장에서의 고충을 토로하는 책들이 넘쳐 나는 걸 보면 내 주변만 그런 건 아닐 게다. ('진심으로 행복하다'라는 말은 '돈 안 받아도 좋다'라는 의미다.)


나는 '행복한 직장생활'이라는 말이 비현실적인 이유를 오래 고민했다. 단순히 '남의 돈 버는 게 쉽냐'라는 단념보다 뭔가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 의문 끝에 진화심리학에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오랜 수렵·채집기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끊임없이 부과됐던 적응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계산 기관들의 체계이다. _Steven Pinker


170만 년 전 시작된 구석기시대에 비해 농경사회가 시작된 것은 고작 1만 년 전이다. 1만 년은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거나 진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하물며 몇 백 년도 안된 직장 생활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수렵채집 생활에 더 적합한 몸과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16세기 중엽 출연한 공장제 수공업을 직장생활의 초기 모습이라 가정)


공포심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주요 대상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높은 곳, 낯선 사람들, 뱀, 거미, 어둠... 우리는 자동차나 전기 콘센트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것들이 뱀, 거미보다 훨씬 위험한 요소인데도 말이다. _David Buss


구석기시대에 가장 큰 스트레스는 맹수와 맞닥뜨리거나 부족 간의 전쟁 같이 생사가 달린 문제였을 거다. 그때 구석기인의 생명을 구했던 스트레스에 대한 투쟁 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 지금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격렬히 움직여야 한다. (https://psychlopedia.wikispaces.com)
투쟁 도피 반응 (Fight or Flight Response)

교감신경 활성화 / 심장 박동 수 & 호흡 속도 증가 / 간에 비축된 포도당 분비 / 근육과 뇌의 중요 부위 혈액 증가 /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증가 / 소화기관 혈액감소 / 땀 증가, 침 분비 감소 / 동공 확대 / 면역체계 억제 상태


"스트레스 자극 → 투쟁 도피 반응 → 격렬한 운동 → 회복"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는 싸우든 도망가든(Fight or Flight) 살기 위해선 격렬한 신체 활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격렬한 운동을 대비하는 투쟁 도피 반응은 구석기인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었을 거다.


하지만 직장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상사한테 깨졌다고 몸 쓸 일은 거의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메신저로 뒷담화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구석기시대에 그랬듯이 격렬한 운동을 대비한다. 맥박이 빨라지고 소화마저 중단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혈압이 오르고 속병부터 생긴다.


직장에서는 투쟁 도피 반응 후에 '격렬한 운동'이 없으니 우리의 신체는 회복 단계로 넘어 가지 못한다. 더 나쁜건 그 상태에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사한테 깨지고 고객한테 시달리고...)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계속 긴장상태에 있으니 병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주기적인 운동이 중요하다. 운동은 이제 스트레스 원인이 해결되었다고 몸에게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그렇게 우리도 구석기인들이 맹수로부터 벗어나 느꼈을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


현대인이 겪는 스트레스 반응이 구석기시대와  비슷하더라도 스트레스 원인은 분명히 다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원인은 적어도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꼴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엄습할 때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라는 마음가짐이 스트레스의 반응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영향을 주는 성질이 세대를 거치면서 좀 더 발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덜 느끼는 성질이 세대를 거치면서 좀 더 발현될 거다. 그렇게 되면 수십만 년 후에는 직장 스트레스가 사라지지 않을까? 그 때까지 인류가 지금과 유사한 직장생활을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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