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행복하면 된다는 것
제가 행복에 대해 깨달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결론만 얘기하면 뜬금없기 때문에 당시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바뀌는 입시 제도를 피해서 다들 '하향 지원'하던 때였죠. 저는 뭣도 모르고 '소신 지원'했지만 다행히 합격했습니다. 지나친 눈치 작전으로 인한 낮은 경쟁률 덕분이었습니다. 입학해보니 역시나 저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군대에 가기 전까지 2년 동안 정말 우스운 학점을 받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백지를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공부와 담을 쌓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겁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너무 과분한 학교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여기서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생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이 제게는 심각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1997년 9월 복학했습니다. 일단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날 저녁도 쫓기는 심정으로 도서관에 앉았습니다. 모임이 있었지만 갈 맘이 안 생겼습니다. 연습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모르겠더군요. 재수강하는 기본 과목이니 못 푸는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입대 전 악몽이 재현되는 심정이었습니다. 불안감을 동반한 짜증이 밀려왔죠.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데이션(gradation)이 압권이었죠. 순간 저는 유체이탈과 유사한 경험을 합니다. 마치 천장에서 제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죠.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대학, 학과에 와서 하고 싶은 공부 하는데
지금 유일한 불만은 그 문제가 안 풀리는 거구나
야, 이 행복한 놈아!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며 짜릿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습니다.
좀 거창하지만, 이때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런 완벽한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행복하면 된다는 것.
요즘 저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실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민도 많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과 행복은 별개라는 알죠.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아, 학교요?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백지 내는 일도 없었고요. 무려 A+학점도 몇 번 받아 봤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좀 더 노력을 했어야 하더라고요.
남자들은 스트레스받을 때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을 꾸잖아요? 저는 학점이 모자라 졸업이 안 되는 꿈을 더 많이 꿨습니다. '졸업을 했으니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거 아니냐' 이러면서 잠에서 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