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독서인(無讀書人)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지독히도 책 읽기를 싫어했다. 어려서 읽어야 하는 동화책, 위인전은 물론 무협지, 드래곤 볼, 슬램덩크 같은 만화책도 읽지 않았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냐'는 형의 핀잔에 반박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입사 후에도 무독서(無讀書)는 계속되었다. 잘 알면서도 운동을 실천하기 어렵듯,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첫째 아이가 태어난 후였다. 당시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아이를 재우려고 불을 끄면 나는 골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 골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래된 책을 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재우는 동안 찍 소리 못 내고 책을 봤다. 뜻하지 않게 규칙적인 독서를 한 셈이다. 처음 집어 든 책을 며칠 만에 다 읽었다. 생각보다 빨리 다 읽은 것이 신기했다. 그때까지 책 한 권을 읽는 데 며칠이 걸리는지 조차 잘 몰랐던 거다. (웃지 마시라. 부끄러운 고백 중이다.)
골방에 있던 몇 권 안 되는 책을 다 읽고 나니 새로운 책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이 심정을 이해할 거다. 무독서인(無讀書人)에게는 책 고르기 조차 쉽지 않다.
나는 우선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으니 내용이 검증되었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그중에서도 어렵지 않은 책을 선택했다. 내 독서력이 부족하다는 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한두 권 늘면서 두 가지를 크게 깨달았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으니 독서를 멈출 수 없었다. 남들보다 한참 뒤졌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으니 읽기 속도가 더딘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참고 읽었다. '어떤 책을 읽었다'라고 말하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도저히 완독이 어렵다 판단되면 남은 부분을 훑어 읽고 마무리한다. 그거 아니라도 읽을 책이 많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책꽂이를 채워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뒤쳐진 독서를 따라잡겠다는 욕심에 '1년에 60권 읽겠다'라는 식으로 목표를 세웠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책은 슬며시 피하고 권수를 늘리는 데 급급한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몇 권을 읽었는지 따지지 않는다. 대신 매일 정해진 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책을 선택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한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성에 찰 때까지 그 분야의 책을 주로 읽는다. 그러고는 다른 분야로 옮겨 가는 식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산발적으로 주제를 고르는 것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가끔 책을 읽지 않던 시절에 허송한 시간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늦게라도 시작한 독서에 감사하는 수밖에. 나중에 독서 경력이 더 쌓이면 책 읽는 방법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지금은 내가 이미 읽은 책을 사람들이 언급한 때나 서점에서 발견할 때의 뿌듯함이면 충분하다.
'그 골방에서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도 무독서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