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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Mar 31. 2017

회식자리에서 꼰대가 되는 방법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꼰대!

어설픈 꼰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꼰대라고 욕할 수준은 아니지만 존경할만한 선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죠. 그들이 더 이상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고 온전한 꼰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회식자리에서 꼰대가 되는 방법을 몇 가지 적어 봤습니다. (네, 쓸데없는 글 맞습니다.)


1. 상석을 고수하세요.

대체로 상석은 출입문과 멀리 떨어진 안쪽이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편한 위치입니다. 당신보다 상급자가 없다면 무조건 상석을 고수하세요. 초반에는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개념 눈치 없는 부하 직원이 있을 겁니다. 살짝 못마땅한 표정만 지으세요.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업무를 핑계로 갈구면 질책하면 됩니다. 왜 혼나는지 사람들이 모를 거 같지만, 몇 번 반복되면 대충 눈치챕니다.


그렇게 상석을 따지다 보면, 어쩌다 회식자리에 늦게 가더라도 내 자리가 비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일 단계 성공입니다. 꼰대의 필수 항목인 '권위적'인 성품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착각하진 마세요. 당신의 권위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권위적인 성품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뿐입니다.


출처 : 공직자가 꼭 알아야 할 직장예절 / 행정안전부


2. 전체 대화를 본인이 주도하세요.

초보 꼰대들은 '다들 가만있느니 나라도 떠드는 거지'라고 변명합니다. 회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본인이 희생한다는 거죠. 뭐 괜찮습니다. 다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죠. 점차 혼자만 말하는 것에 익숙해질 겁니다. 처자식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데, 몹쓸 아재 개그에도 빵빵 터져주는 청중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혹시 회식비를 당신이 낼 거라면 더 당당하셔도 됩니다. '발언권은 돈 내는 사람 거다'라는 참신한 개소리도 있으니까요. 어느 날 "내가 쏠게 한잔 하러 가자"라고 던진 말에 부하직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면 당신은 꼰대질을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떠들지 않으면 회식 분위기가 썰렁하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분 계시죠? 얼마나 오래 닥치고 잠자코 있어 보셨나요? 어색하더라도 좀 더 참아 보세요. 장담컨데, 당신이 말수를 줄이면 다들 알아서 웃고 떠들고 잘 놉니다. 진짜 소통이 꽃피는 회식이 되는 거죠. 꼰대가 되고 싶다면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상황입니다.


3. 필수 멘트를 익히고 습관화하세요.

진정한 꼰대로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난이도가 좀 더 올라갑니다. 우리의 목표는 꽐라 만취 상태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꼰대 to the core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꼰대 필수 멘트들을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연습해야 합니다. 혀가 꼬인 상태에서도 정확히 발음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나 때는 말이야
내가 너만 했을 때
요즘 것들은 말이야
나니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

그리고 기본 멘트가 철저히 완성되어야 진정한 고수의 멘트를 날릴 수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꼰대는 아니잖냐?' 또는 '내가 그래도 소통은 되잖냐?'와 같은 멘트죠. 고수의 이런 멘트에 부하직원들은 잠시 어이를 잃고 몸이 경직됩니다. 단지 썩소를 감추기 위해 고개를 끄덕일 뿐. 


초보 꼰대가 이런 고급 멘트를 사용하면 '근데 요즘 좀 변하셨어요'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련이 한방에 무너지는 거죠. 반드시 '꼰대 같다'는 주변의 소리를 3회 이상 들은 후에 사용해야 합니다.


4. 디테일에 강해야 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진정한 고수는 디테일에 강합니다. 앞의 3가지 항목을 어느 정도 연마했다면 디테일을 챙길 때입니다. 우선 고수 꼰대용 회식 멘트를 소개하겠습니다. 


(퇴근 시간 직전) 약속 없으면 한잔 어때?
약속 있는 사람은 빠져도 되고...
김대리는 또 약속 있지?
늦게까지 고생했는데 내가 밥 사줄께
(1차를 마치며) 2차는 원하는 사람만 가


각 멘트의 핵심은 젠틀한 척하는 겁니다. 속으로는 아무리 좀팽이 속 좁은 생각을 하더라도 겉으로는 세상 관대하고 이해심 넓은 '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런 연기가 통할 거라는 생각은 욕심입니다. 부하직원들은 당신의 꼼수를 다 알아봅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처한 상황에서 소개된 멘트를 활용하면 머지않아 진정한 꼰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하직원들이 당신과 멀리 떨어져 앉기 위해 자리 쟁탈전을 하는 그날까지 가열찬 꼰대질을 응원합니다.




P.S. 혹시 '에이, 그래도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하십니까? 


훗.


진정한 꼰대는 '나는 안 그런다'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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