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호 Mar 05. 2017

작은 회사로 이직 후 달라진 점

퇴사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더라.

공식적으로 2016.12.31일 퇴사하고 2017.2.6일 재입사했다. 굳이 '공식적'이라고 한 이유는 이전 직장을 떠나고 새 직장에 처음 출근한 실제 날짜가 '공식적'인 날짜와 꽤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직자로 지낸 것은 불과 며칠 안된다. 17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면서 이렇게 바로 출근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나의 이직도 그렇게 예정된 일정 없이 진행되었다. 


'공식적'으로 새로운 직장에서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보니 이전 직장 생활과 달라진 점이 새삼 느껴진다. 그것은 전체 직원 규모가 1/100 이하로 줄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먼저 떠오르는 변화는 연봉이다. 성과급이나 각종 수당을 고려하면 공개하기 곤란할 정도로 줄었다. 봉급생활자에게 연봉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새로운 일이 예전부터 원하던 것이라도 그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생활수준을 조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돈을 쓸 때마다 한번 더 고민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사십 대에, 그것도 뾰족한 대책 없이 퇴직해서 바로 일자리를 찾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이라면 행복에 별 영향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충분히 동의한다. 게다가 새로운 일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안정적이다. 이런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줄어든 연봉을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가위의 위치를 유심히 보면 연봉이 얼마나 줄었는지 추론할 수 있을지도 모름


두 번째 변화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나 자신을 조직에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동적인 태도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큰 조직에서는 관리를 통해 수동적인 태도를 덮을 수 있지만, 소규모 조직에서는 그런 태도가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사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뻔히 보인다.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직원에게 급여를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마음가짐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수동적인 태도가 사라지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내 직업이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일을 주도해서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한다. 아쉽게도 한 직장을 오래 다니다고 저절로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이 아닌 나의 직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1인 기업의 심정으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홀로서기가 가능한 직업인 말이다. 1인 기업가로서 주어진 일에 만족하지 말고 먹거리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별나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무실의 자리도 임대해서 쓰고 거라 생각하고 있다. 나 스스로 1인 기업가임을 체감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내게 맞는 노트북과 모니터, 의자를 직접 구입했다.

의자형 인간에서 승진형 인간으로


세 번째는 형식적인 업무로부터 자유다.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소규모 조직의 단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조직의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했던 관료화된 조직에서 '체계'라는 것은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것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이해하리라 믿는다. 내용과 상관없이 폰트와 줄 간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면지를 생산했으며, 어차피 최상위 결재자의 한마디에 좌우될 품의서에 사인할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소규모 조직에서는 그런 헛수고가 없다. 최고 결정권자와 협의하고 결정하면 끝이다. 불필요한 형식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으니 마땅히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아직 이른 판단일 수 있으나, 소규모 조직이 1인 기업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강한 조직 형태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가족과의 시간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회식이 많았다. 집에서 저녁 먹는 일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뿐이었다. 억지로 가야 하는 술자리를 불평하면서도 막상 건수가 없으면 내가 자리를 만드는 '저녁이 없는 생활'이었다. 시간, 건강, 지출 등 여러 모로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니 자연스레 술자리가 줄었다. 


회사의 규모와는 상관없지만, 출근시간도 1시간 늦어졌다. 아침 1시간은 정말 크다. 덕분에 운동하고 아침까지 챙겨 먹고 출근해도 여유가 있다. 누구 말대로 사람답게 살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여유 있는 생활이 뭔가 어색했다. 어쩐지 제대로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명백히 착각이다. 이제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안일을 더 분담하게 되니 이제야 제대로 된 가족의 일원이 된 거 같다.


정리하자면, 나의 이직은 일단 성공적이다. 익숙해진 회사를 떠난다고 세상이 어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같이 긍정적인 분위기로 지내다 보면 나의 직업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신데렐라는 과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