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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Feb 17. 2017

신데렐라는 과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새삼 '쾌락적응'을 생각하게 된 아침

인간은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서 신체의 기능뿐 아니라 심리적 방어체계도 생존에 유리하도록 발전시켜 왔다. 비록 우리가 갖고 있는 심리적 방어체계가 현재의 삶과 맞지 않더라도 먼 옛날 인류의 생존에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투쟁 도피 반응은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일으키지만 원시인들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에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관련 글 : https://brunch.co.kr/@wonimini/14 )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은 후에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심리도 그렇게 물려받은 인간의 특질 중 하나다. 소냐 류보머스키는 <행복의 신화>에서 이것을 '쾌락적응 hedonic adaption'현상이라고 부른다. 그토록 원하던 집을 사거나 직장을 구하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금방 적응해 버린다.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 새로운 조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잠깐 옆길. 그러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라고 끝나는 동화의 결말을 100% 믿을 수 없다. 신데렐라도 왕자와 결혼한 후 한동안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오래지 않아 궁전 생활이 지겨워졌을 거다.


그런데 '쾌락적응'도 생존에 유리한 것일까? 늘 행복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으로 바라보면 '쾌락적응'은 행복의 방해물이다. 쾌락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더 오래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인류의 생존에도 유리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라는 식의 행복 사업이 지금 같이 번창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정말 그럴까? 


원시인의 생활을 상상해 보자. 사냥 후 안전한 동굴로 돌아와 배를 채우며 마냥 행복해하던 원시인도 있었을 것이고, 만족은 잠시 더 나은 사냥 방법을 고민하던 원시인도 있었을 것이다. 수십만 년이 흐르면서 어떤 원시인이 살아 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을지는 쉽게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단편적인 생각으로는 쾌락적응이 행복의 장애물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방어체계인 것이다.


우리는 본능으로 남겨진 '쾌락적응'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행복감을 늘릴 수 있다. 커다란 기쁨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기쁨의 빈도를 늘리는 것이다. 어쩌다 한번 있는 대단히 기쁜 일도 결국은 곧 적응된다. 그러니 소소하더라도 하루하루 기뻐할 일을 만드는 것이 결국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그래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만들어 간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부정적인 심리 상태, 즉 공포나 슬픔에 대한 감정도 예상하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세월호와 같이 시간이 지나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쾌락적응'에 대해 새삼스런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아래 속보 때문이다. 저 사람 구속되면 꽤 오래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불과 한두 시간이었다. 구속이 유죄 판결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시간을 끌고 있으니 마냥 좋아하고 있을 노릇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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