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자주 하면 꼰대인 줄 압니다만...
직장을 평가할 때 연봉을 우선시하는 사회초년생을 자주 봅니다. 물론 일에 대한 대가는 당연한 것이고, 기왕이면 더 많이 받으면 좋겠죠. 하지만 현재의 연봉이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많이들 놓치고 있는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낡은 조언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연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2017년 9월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퇴직연령은 평균 50.2세입니다. 법정 정년은 60세인데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죠.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아직 먼 훗날의 얘기로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급변하는 시대에는 직장을 옮기는 일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는 말이죠.
따라서 앞으로 직장의 선택은 당장의 연봉보다 진로(Career Path) 설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연봉이 낮은 조건이라도 장기적인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전해야 합니다. 연봉이 높다고 직장을 선택했다가 그 일을 갑자기 못하게 되면 새롭게 경력을 쌓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선택할 때 연봉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주어진 일이 나에게 맞는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신입사원을 벗어나 경력사원으로서 직장을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직무 역량입니다. 계획된 진로대로, 이전 직장에서 실무로 다져진 업무 능력을 무기로 직장을 옮기는 거죠. 그런데 직무 역량은 정상적으로 실무를 수행해 왔다면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실무를 해왔다는 것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니까요.
그보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 평판이 전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경력기술서가 아무리 화려해도 평판 조회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확인되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채용할 회사는 없을 겁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과 관련하여 잊지 못할 오래된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1999년의 이야기인데, 당시는 1997년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요즘 못지않게 취업이 어려웠죠. 멀쩡하던 대기업이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을 하면서 신입사원을 뽑지 않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간신히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기업들의 연봉을 비교하곤 했습니다. H사는 연봉이 2,400이네, L사는 전통적으로 짠 편이라 2,300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한 번은 당시 과 동기들의 아지트였던 PC방에 모여서 게임은 안 하고 연봉 얘기를 하고 있었죠. 그런 대화를 들으시던 PC방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연봉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돈은 기대 이상으로 벌 수도 있고 예기치 않게 날릴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고민과 각오다.
참고로, PC방 사장님은 인생 경험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다양한 산업의 동향을 꽤 뚫고 계셨던 걸로 볼 때 경력이 다양하셨던 게 분명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우리에게 지침이 되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습니다. 학교 밖 스승님이셨죠.
무슨 말씀인지 감을 못 잡는 우리에게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원한다면 연봉을 따지기 전에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7시에 만나자고 했으면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나타나는 것,
밥값이 없어서 다음에는 내가 사겠다고 했으면 잊지 않고 밥을 사는 것
이와 같이 사소한 약속을 지키다 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씀하시려던 교훈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뻔한 얘기라 흘려 들었지만, 지금은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이었는지 거듭 실감하게 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느냐 아니냐는 직장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잘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확실한 평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바쁜 업무를 좀 도와 달라는 작은 부탁부터 사업을 도와 달라는 큰 부탁까지, 그 평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죠. 따라서 평판을 잘 관리해 온 사람은 주변의 도움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PC방 사장님은 사회초년생들에게 신뢰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쌓아 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던 겁니다. 그런 말씀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저의 사회 경험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지금 취업하는 세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재의 기성세대보다 직장을 옮기는 일이 많을 겁니다. 저는 제 스승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실천하지 못했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직장을 선택하기 전에 연봉만이 아니라 5년, 10년 뒤의 진로를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선택하든, 사소한 약속의 중요성을 더 일찍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취업이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진로를 고민해서 직장을 선택하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잘 압니다. 그렇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 연봉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주업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모의면접이나 채용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취준생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고요. 제 경험과 생각만으로는 부족한 듯하여 틈틈이 취업 컨설턴트의 책이나 강의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이곳에 적고 있습니다.